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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봄이 오면 생각나는 여인

최종수정 2021.03.08 12:00 기사입력 2021.03.0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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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봄이 오면 생각나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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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황제에게는 그럴싸한 아이디어였다. 후궁으로 쓸 몇천 명의 궁녀를 뽑아놓고 평가할 시간을 줄이려고 그림을 잘 그리는 화공에게 초상화를 그리도록 했다. 시간이 나면 미인도 걸개그림이 있는 전용 도서관으로 달려가 나름 순서를 정해 후궁을 간택했다. 넘쳐나는 욕망을 다스리지 못한 한(漢)나라 11대 황제 원제(元帝) 이야기다.


황제의 화공 모연수에게 궁녀들이 앞다퉈 뇌물을 바치기 시작했다. 이쁘게 그려달라고.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인 왕장은 가난했고 자신의 용모를 속일 마음도 없었기에 화공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 결과는 뻔했다. 왕장의 초상화는 볼품없게 못생긴 모습으로 그려졌기에 황제는 찾지도 않았다.

중국인들에게 북쪽의 오랑캐는 항상 위협적인 존재였는데 당시 흉노족의 선우(왕)인 호한야와는 화친관계를 맺고 있었다. 선물을 주고받는 자리에서 한나라의 여자를 원하는 것을 눈치챈 황제는 도서관에 달려가 미인도를 찾았다. 줘도 아쉽지 않을, 볼품없이 그려놓은 왕장의 그림을 확인하고 내줬는데…. 왕장의 아름다운 실물을 본 흉노의 왕은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데리고 돌아갔다. 황제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뇌물을 받고 황제를 속인 죄로 모연수를 참수했다.


양귀비, 초선, 서시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으로 불리는 왕소군(흉노로 시집간 후 소군이란 칭호를 얻었다)의 이야기는 짧지만 드라마틱하게 서술돼 있다. 그녀가 다른 미인들보다 먼저 기억되는 이유는 외모만큼 아름다운 마음씨 때문이다. 이웃 국가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힘을 아끼지 않았고 80년간 흉노와 중국과의 전쟁은 없었다. 몽골 지역의 춥고 삭막한 풍토에서 상심과 망향의 슬픔으로 지낸 심정을 담은 시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봄이 온들 봄 같지가 않네’ 춘래불사춘의 주인공이다.


그 일이 일어난 시기는 BC 33년. 몇십 년 뒤 한나라는 망한다. 적미병, 녹림병 등 농민들이 산적으로 변하고 글로 표현하기 끔찍한 혼란의 구렁텅이에 국민은 빠져든다. 진시황이 죽고 한 고조 유방이 항우와의 결사항전으로 간신히 한나라의 질서를 세웠고, 그의 후손인 문제는 스스로 농사를 짓는 등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면서 황후의 치맛자락조차 길게 하지 못하도록 했다. 7대 황제인 한무제 때는 주변국들을 정리하고 국제교역 실크로드의 기틀을 세웠다. 하지만 그들의 후손이 이같이 잠깐 한눈을 파는 사이 선조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국민은 도탄에 다시 빠진다.

대부분의 창업자는 맨손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일을 처리해낸다. 그것이 나라를 일으키든 기업을 세우든 비슷한 스토리가 있다. 반대로 망조가 드는 조짐은 강둑이 조그만 틈에서 터지는 것처럼 작은 일에서 시작한다. 창업자들은 그래서 후손들에게 절약을 강조하고 매순간 정신 차릴 것을 훈육한다. 한비자는 리더에게 호불호조차 밖으로 드러내지 말라고 강조한다. 황제나 대통령에게만 리더십이 요구되는 게 아니다. 크든 작든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 공무원, 지점장, 팀장,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도 리더다. 수십 명이 타고 있는 버스의 기사도 그 운행 순간만큼은 리더고. 우리는 모두의 리더가 된다.


봄이 왔다. 봄 청소도 할겸 느슨해진 마음도 다잡을 겸 PC나 핸드폰 속의 쓸데없는 파일이나 사진도 청소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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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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