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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규의 7전8기]헌법재판소에서 해결할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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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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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은 채무자와 채권자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영역이다. 채무자회생법의 이러한 특성은 법 제정이나 실무 운용에 큰 영향을 미친다. 경제가 어려우면 면책(채무면제)의 범위를 넓히는 쪽으로 법 개정이 이루어지고 법원도 채무자에 대한 면책을 적극적으로 허용한다. 그러면 채권자 집단에서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그에 따라 정반대의 법 개정이나 실무 운용이 이루어진다. 최근 채무자회생법의 개정이나 실무 운용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그대로 나타난다.


2005년 채무자회생법이 제정된 이래 개인회생절차에서 변제기간을 5년으로 유지하다가, 2017년 12월 12일 3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으로 개정됐다. 문제는 변제기간 단축의 적용대상을 개정법 시행일인 2018년 6월 13일 이후에 신청하는 개인회생사건으로 제한한 것이었다. 적용대상을 위 날짜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신청을 하루라도 일찍 한 채무자는 기간 단축에 따른 혜택을 보지 못하게 됐다. 이에 일부 법원에서 2018년 6월 13일 이전에 신청된 개인회생사건에 대하여도 기간 단축의 혜택을 부여했지만, 채권자 집단의 반발로 무산됐다. 대법원이 2019년 3월 변제기간 단축에 대한 심리 없이 3년으로 변제계획을 변경해주는 것은 위법하다고 채권자들의 손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채무자측으로부터 채무자회생법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변제기간을 단축한 취지는 개인회생제도의 취지에 맞게 회생 가능한 채무자들을 조속히 생산 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2018년 6월 13일 이후에 개인회생절차를 신청한 채무자와 그 이전에 개인회생절차를 신청한(나아가 변제계획을 인가받은) 채무자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에 2020년 3월 24일 한 번 더 채무자회생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변제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한 시행일인 2018년 6월 13일 당시 변제계획인가결정을 받은 채무자가 위 시행일에 이미 변제계획에 따라 3년 이상 변제계획을 수행한 경우 당사자의 신청 또는 법원의 직권으로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들은 후 면책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채무자회생법 부칙 제2조 제1항). 변제기간 단축의 적용대상을 소급하여 확대할 경우 채권자의 신뢰를 침해할 우려가 있으므로 2018년 6월 13일 이전에 변제계획인가결정을 받은 채무자가 그 시행일에 이미 변제계획에 따라 3년 이상 변제계획을 수행한 경우에는 당사자의 신청 또는 직권으로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들은 후 면책의 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면책 요건으로 '2018년 6월 13일에 이미 변제계획안에 따라 3년 이상 변제계획을 수행한 경우'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 시행일에 3년 미만으로 변제한 경우(예컨대 2년 11개월 변제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2018년 6월 13일 현재 이미 3년의 변제계획을 수행한 채무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그렇지 못한 자의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또한 채권자측 입장에서는 2020년 3월 24일 개정에 의한 변제기간 단축에 따른 면책은 소급입법금지원칙에 위배되거나 개인회생채권자의 신뢰이익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화되고 있다. 현재 법원 실무는 2018년 6월 13일 당시 변제계획에 따라 이미 3년 이상 변제계획을 수행한 개인에 대하여만 면책을 인정하고 있다. 이에 채무자측은 채무자회생법 부칙 제2조 제1항의 적용대상에서 2018년 6월 13일 이전에 변제계획을 3년 미만으로 수행한 자를 제외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과연 부칙 적용대상을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맡겨야 할 일인지 의문이다. 채무자의 신속한 사회복귀라는 법 개정 취지로 보면, 개정법 시행일에 3년 이상 변제하지 못한 경우라도 이후 3년을 변제하면 그 시점에서 면책을 결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법원의 소극적인 실무 운용이 아쉽다.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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