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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탐'이라는 상상의 괴물

최종수정 2020.10.15 12:33 기사입력 2020.10.1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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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올해 한글날에도 어김없이 국보 1호를 교체하자는 주장이 등장했다. 국보 1호를 숭례문에서 훈민정음으로 교체하자는 주장은 이제 한글날이면 으레 반복되는 연례행사가 된 듯하다.


사실 국보 1호를 교체하자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1996년 김영삼 정부 당시 '일제 지정 문화재 재평가위원회'가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국보 1호 교체를 검토했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숭례문을 남대문으로 격하해 부르고 국보 1호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숭례문을 통과해 한양에 입성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일제가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지정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보 1호 교체 논란은 오늘날 욕망사회의 씁쓸한 뒷면을 보여주는 듯해 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국보 1호 교체 논란에 불을 지른 사건은 2008년 2월10일 발생한 숭례문 방화다. 방화 사건 후 숭례문 복원 작업이 이뤄졌지만 품격 논란이 커졌다. 이후 한글날마다 국보 1호 교체 요구가 있을 정도로 논란은 더 커졌다.


숭례문 방화 사건의 장본인 채종기가 밝힌 방화 이유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그는 토지 수용 보상금이 적다는 것에 불만을 품고 방화했다. 채종기가 소유한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토지가 한 건설사의 신축 아파트 건설 예정 부지에 포함되면서 그는 건설사와 보상금 문제로 법적 다툼을 벌였다.

소송 결과는 채종기의 패소였다. 그는 패소 후 사회에 적개심을 가졌고 숭례문 방화로 이를 표출했다. 채종기가 저지른 만행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배태된 욕망이 낳은 참사였다. 물질을 향한 이글거리는 욕망이 국보 1호를 불태운 셈이다.


욕망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양날의 검이다. 돈 벌어 좋은 집에서 좋은 옷 입고 맛있는 음식 먹으며 살고 싶다는 욕망은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윤택하게 해준다. 문제는 절제다. 무조건 '남들보다 더'라는 과도한 욕망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안기게 된다. 숭례문 방화가 이를 잘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20세기에 사회주의와의 체제 대결에서 승리한 뒤 점점 더 폭주하고 있다. 최근 들어 자본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지만 과연 폭주를 막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2007년부터 해마다 소비 트렌드 10개 키워드를 공개하고 있는 김난도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자학과 교수가 지난 13일 온라인으로 2021년 소비 트렌드 10개 키워드도 공개했다. 김 교수는 10개 키워드 중 개인적으로 가장 놀란 키워드로 '자본주의 키즈'를 꼽았다. 그는 젊은 세대들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생각이 굉장히 강하면서도 생각은 자본주의적으로 하는 역설적인 세대라고 설명했다.


지금 20대의 젊은 세대들은 태어난 뒤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닷컴 버블, 신용 사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 자본주의의 실패를 거듭해 지켜봤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은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승리한 뒤 태어나 자본주의를 체화한 세대이기도 하다.


삼국지 이야기를 그린 만화 '창천항로'는 공자가 말했다는 '탐'이라는 상상의 괴물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탐의 이야기는 꼭 자본주의의 말로를 보여주는 듯하다.


탐은 몸집이 거대하고 굉장히 탐욕스러워 무엇이든 먹어치운다. 흙덩이든, 광물이든, 산이든, 바다든. 물론 인간과 인간의 조형물까지도 먹어버린다. 맛도 형태도 가리지 않고 아무튼 뱃속에 처넣는다. 게다가 정력은 무척 세 만족할 줄 모른다. 탐은 마지막으로 해를 먹어치운다. "그리하여… 탐은 어둠만을 남긴다. '무(無)'가 된다. 욕망의 끝인 것이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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