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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자전거로 배운 역사

최종수정 2020.06.29 11:00 기사입력 2020.06.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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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포럼]자전거로 배운 역사


백제성? 고구려·신라·백제의 그 백제성이 여기 후쿠오카에 왜 있지? 일본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니다가 우연히 발견한 푯말이었다. 궁금증은 수성이라는 유적지에서 증폭됐다. 물길을 이용해 만든 방어용 토성인데 백제인들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궁금증은 유홍준 교수의 책에서 해결됐다. 우리는 계백의 황산벌만 알고 있는데 실은 당시 세계대전이 금강하구에서 일어났다. 백제와 왜가 연합해서 800여척의 전함으로 마치 노르망디 상륙작전 같은 상황을 만들었으나 신라와 당의 연합군에게 크게 패해 이곳 후쿠오카로 도망쳐왔고, 백제인들과 왜인들은 나당 연합군이 뒤쫓아 쳐들어올 것을 대비해 백제식 방어용 군사기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일본 땅에서 백제인들의 흔적을 발견한 후로 나의 일본 여행은 우리 선조들의 문화를 추적하는 재미로 이어졌고 여행 모습이 바뀌었다.

쇼핑을 즐기고 한중 관광객이 대부분인 맛집과 온천 관광지를 찾다가, 어느새 기차역이나 안내센터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역사유적지를 찾아 우리 선조들의 문화를 느끼는 쪽으로 변했다.


요시노가리란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에선 그 규모에 압도돼 놀라기도 했지만 그 주인공들이 한반도에서 농경문화를 지니고 건너온 우리 선조들이고 그들이 일본의 지배층으로 군림하면서 오늘날의 주된 일본인으로 형성했다는 생각에 온 털이 쭈뼛 섰다. 총·균·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이런 학설을 상기시키며 나의 일본 자전거 역사 여행은 가속됐다. 왜 남방계 원주민들이 추운 홋카이도 쪽에 살게 됐는지 이해가 될 때는 머릿속이 해변에 있는 것처럼 시원해졌다.


사슴으로 유명한 나라현에선 어둠이 질 때까지 자전거를 타며 유적지를 돌다가 인파 속에 휩쓸려 도다이지(동대사)로 향했다. 일년에 한 번 거대한 부처님상을 물청소하고 한밤중에 불을 켜서 그 대불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검은 하늘 아래 광채 나는 대불을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고대인들이 느꼈을 그 웅장하고 두려울 만큼의 장대함. 왜(倭)에서 일본으로 고대국가의 틀이 다져지는 곳에 불교의 힘과 우리 선조들의 능력이 느껴졌다. 교토의 어느 대학교 캠퍼스를 자전거로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윤동주 시비 앞에선 먹먹해진 가슴으로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골프를 잘 못 치는 난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를 탈수록 일본에선 역사를, 국내에선 애국심을 배운다. 금강의 환상의 자전거길, 강릉의 솔밭, 호반의 춘천, 화천의 산소 100리길, 낙동강의 낙조 등 아름다움을 볼 때마다 이기심이 조금씩 사라지고 국토 사랑 같은 것으로 채워진다.


담양의 멋진 대나무길에서 마주친 작은 새 부리 속 먹이가 된 나방을 보며 깨달음! (왜 말라리아 박멸을 하기 위해 모기를 싹 다 없애면 안 되는지….) 또한 녹조로 썩은 강가의 끔찍한 악취를 맡으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추운 바닷바람을 막아준 제주 해녀들의 돌담인 불턱 안에서, 또 이화령의 힘들었던 언덕들을 고생하면서 오를 때 도와주신 분들로 인해 더불어 사는 것의 중요성을 배웠다.


책으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땀 흘리며 자전거로 배우고 있다. 늦기 전에 북녘땅도 자전거로 돌아보며 새로운 깨달음도 얻고 싶다. 자랑스러운 고대사와 반대로 한없이 부끄러운 근대사 속에서 일제와 맞서야 하던 독립투사들의 흔적도 찾아다니고 싶다. 따듯한 자동차 속이 아닌 맹렬한 찬바람을 코끝 손끝 시리도록 자전거로 돌아다니며 말이다.


서재연 미래에셋대우 갤러리아WM 상무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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