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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의 클래식 라운지] 1939년 4월9일 앤더슨의 목소리가 미국에 울려퍼졌다

최종수정 2020.06.24 11:16 기사입력 2020.06.2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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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카니니가 극찬한 흑인 가수 '앤더슨'…피부색 달라 메트오페라 지각데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흑백분리정책 반대해 흑인 여가수·연주자들도 중용
노먼·헨드릭스·배틀 '빅3 시대'로 발전…기악·지휘 분야 블랙파워 아직 미약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한정호 객원기자·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고 외치는 대규모 시위들이 미국을 흔들었다. 항의 열기는 전방위로 번져 스포츠와 미술, 패션 장르에서도 흑인 차별에 항의하는 유명인들의 활동이 거세다. 그러나 미국 대중음악의 거물급 인사들은 경각심을 느끼고 사태에 비교적 냉정하게 대처하는 점에서 사회가 참고할 만하다.


팝스타 비욘세는 미국 노예해방의 날인 지난 19일 '준틴스데이(Juneteenth Day)'에 맞춰 신곡 '블랙 퍼레이드'를 발표했다. 싱어송라이터 제이슨 므라즈는 신보 '룩 포 더 굿' 수익을, 방탄소년단은 무려 100만달러(약 12억1400만원)를 흑인 인권 개선 캠페인에 기부했다.

유명 레이블 '리퍼블릭 레코드'는 '어번(urbanㆍ도시) 뮤직'이라는 표현을 이제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어번 뮤직이란 다양한 흑인 음악 장르를 통칭하는 표현이다. 어번의 테두리가 흑인 아티스트들과 백인 음악계를 분리하고 흑인 예술가를 주변화한다는 이유에서다.


재즈와 힙합, R&B가 미국 사회의 도전에 답하면서 주류로 올라서는 과정 자체는 흑인 문화운동의 연장선이다.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1929~1968) 목사의 말대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부르는 슬픈 가사가 면면히 이어지는 건 '승리를 추구하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음악 장르와 달리 클래식에서 흑인 민권운동의 흐름은 미약하다. 텍사스 오스틴 심포니의 백인 여성 트롬보니스트가 흑인 운동을 조롱하는 소셜미디어 내용으로 해고당한 바 있다. 이것 말고 미국 사회에 반향을 일으킬 만한 파급력 있는 클래식계의 움직임은 아직 없다. 재즈 트럼피터 윈튼 마셜리스, 뉴욕 필하모닉 클라리넷 수석 앤서니 맥길이 각자 소셜미디어에서 항의를 표했을 정도다.

사회적 쟁점에서 클래식 장르가 얼마나 사회와 유리됐는지, 그 안에서도 흑인 예술가들이 얼마나 소외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20세기 이후 클래식에서 흑인 민권운동은 이름만 등장했을 뿐 파편화했다. 클래식계에 처음 등장한 흑인 거장 연주자는 저음을 담당하는 콘트랄토(알토) 마리안 앤더슨(1897~1993)이다. 앤더슨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193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전설적인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가 "100년에 한 번 들을 수 있을까 말까 한 목소리"라고 평가한 뒤 앤더슨은 승승장구했다.

1939년 링컨 기념관 앞에서 야외 공연한 흑인 소프라노 마리안 앤더슨 (C) PBS

1939년 링컨 기념관 앞에서 야외 공연한 흑인 소프라노 마리안 앤더슨 (C) PBS


앤더슨은 어둡고 깊은 울림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 미국의 대표 성악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백인 주류 사회는 '검은 디바'의 등장을 견제했다. 1939년 워싱턴DC 다르(DAR·Daughters of the American Revolution) 기념홀에서 앤더슨의 독창회가 예정됐지만 공연장을 관리하는 보수 여성단체 '미국 혁명의 딸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는 '미국 혁명의 딸들'에서 탈퇴하고 링컨기념관 앞 광장의 야외 공연을 주선했다. 1939년 4월9일, 광장에 관객 7만5000명이 운집해 토스카니니가 그토록 격찬한 목소리를 확인했다.


미국 클래식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에도 앤더슨은 뉴욕 메트 오페라에서 데뷔하기까지 15년 이상 걸렸다. 1955년 '가면 무도회'에 흑인으로는 처음 데뷔할 때 나이가 최전성기를 한참 지난 57세였다. 소프라노 레온타인 프라이스(93), 메조 소프라노 셜리 베럿(1931~2010)과 그레이스 범브리(83)가 앤더슨이 닦은 메트 데뷔의 길을 걸었다.


이들이 제도권 중심부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발휘한 또 다른 유력자가 작곡가 겸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이다. 번스타인은 1940~1950년대 초반에 이미 흑인의 보편적 인권을 정식 클래식 공연 규격으로 편입하려 애썼다.


1955년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흑인 여성 로사 파커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번스타인은 그보다 훨씬 전 공공기관의 흑백분리정책인 '짐 크로법(Jim Crow laws)'에 반대했다. 이는 음악학자 캐럴 오자의 사료 연구로 밝혀졌다.

1970년 레너드 번스타인과 부인 펠리시아가 블랙 팬더스 파티의 리더 필드 마샬 도널드 콕스와 뉴욕 자택에서 함께했다 (C) Stephen Salmieri

1970년 레너드 번스타인과 부인 펠리시아가 블랙 팬더스 파티의 리더 필드 마샬 도널드 콕스와 뉴욕 자택에서 함께했다 (C) Stephen Salmieri



1944년작 뮤지컬 '온 더 타운'에서 번스타인은 이미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준·주역으로 등장시켰다. 흑인 여가수들을 자기가 음악감독으로 부임한 뉴욕 필하모닉 정기 연주회에 세웠다. 번스타인 시절 뉴욕 필은 앤더슨 기용으로 특히 재즈와 흑인 성가에서 강점을 보였다. 1940년대 말 뉴욕시티 심포니 시절에도 번스타인은 흑인 바이올린 주자 에버렛 리(103)를 악장으로 기용했다.


짐 크로법 아래 "분리돼있지만 평등하다"는 인식에 머무르던 흑인 예술가들의 사고관도 번스타인의 작은 노력으로 서서히 변했다. 뉴욕 필 공연이 열리는 카네기홀의 관객 대다수는 백인이었다. 하지만 뉴욕 필은 무료 셔틀을 흑인 밀집 지역에서 출발시켜 계층 간 혼합에 나섰다. 이로부터 영향받아 프랑스 파리 시당국은 훗날 신축 콘서트홀 '필아르모니 드 파리'를 저개발 지역에 배치했다.


번스타인의 선구적 노력에 힘입어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는 오락 분야부터 인종차별을 모니터하게 됐다. 그러나 번스타인 퇴진 이후 뉴욕 필에서 재즈는 "할 수 없는 음악"이 아닌 "하고 싶지 않은 음악"에 머물러 있다.

1970년대 들어 흑인 가수들이 레코딩과 함께 성악계에 경쟁적으로 등장했다. 소프라노 제시 노먼(1945~2019)은 1970년대 독일 베를린 도이치오퍼에서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중 백작부인 역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그는 이후 미국·유럽의 메이저 오페라 무대에서 오랫동안 전성기를 구가했다.

소프라노 바바라 헨드릭스(71)와 캐슬린 배틀(71) 역시 각각 EMI·도이치그라모폰 신보 및 오페라 연기로 사랑받았다. 한동안 국내 언론도 노먼·헨드릭스·배틀을 '흑진주 트리오'로 불렀다. 하지만 흑진주 트리오라는 표현은 이제 인종차별적인 뉘앙스로 사어가 돼버렸다.


메조 소프라노 데니스 그레이브스(56), 소프라노 라토니아 무어(40)와 프리티 옌데(35)는 선배들의 노력으로 인종차별이 덜한 여건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마리안 앤더슨 이후 흑인 디바 계보의 정점이었던 소프라노 제시 노먼 (C) Sergei Chirikov

마리안 앤더슨 이후 흑인 디바 계보의 정점이었던 소프라노 제시 노먼 (C) Sergei Chirikov


음악적 업적의 탁월함으로 영국 왕실에서 경(Sir) 칭호를 받은 베이스 윌러드 화이트 (C) BBC

음악적 업적의 탁월함으로 영국 왕실에서 경(Sir) 칭호를 받은 베이스 윌러드 화이트 (C) BBC


남성 성악가 중에선 베이스바리톤 사이먼 에스테스(82)가 바그너와 슈트라우스 같은 독일 오페라에 정통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자메이카 출신의 베이스 윌러드 화이트(73)는 런던 심포니 음악감독 사이먼 래틀(65)의 총애를 받으며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장년 세대에선 로시니 오페라에 능한 테너 로렌스 브라운리(47)가 두각을 나타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해야 프로 입문이 수월한 기악 분야에서는 흑인 연주자가 드물다. 독일에서 헝가리인 엄마와 흑인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피아니스트 앙드레 와츠(74)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디트로이트 심포니는 1979년부터 '클래식의 근원(Classical Roots)' 콘서트를 연다. 이는 와츠의 업적을 기려 만든 콘서트다. 여기서 많은 후배 흑인 연주자가 공연 기회를 잡는다.


영국에서는 영국흑인클래식재단을 중심으로 흑인 연주자들의 권익 보호에 나선다. 영국 출신 첼리스트 세쿠 카네 메이슨(21)은 데카에서 신보를 냈다. 그는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결혼식에서 연주해 화제를 모았다.


캐스팅과 곡목 선택에서 재량권을 행사하는 지휘자 자리에 여전히 흑인의 공간은 없다. 딘 딕슨(1915~1976)과 제임스 드프리스트(1936~2014)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났다. 북아메리카 카리브해상 트리니다드토바고 공화국 태생의 크와메 라이언(50)이 가끔 서울시향을 객원 지휘할 뿐이다.


역사적으로 클래식 생태계는 성별·종교·지위·경제력에 따른 차별을 묵인하고 교정하지 않았다. 유색인종이 유럽과 미국의 주류 음악 질서에서 겪는 차별은 여전하다. 그러나 클래식계에서 흑인이 겪은 불평등과 아시아계가 체험한 인종적 모욕에 대해 약자들이 연대한 운동은 아직 없다. 프랑스 작가 프란츠 파농(1925~1961)이 저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에서 설파한 흑인과 유색인에게 잠재된 '백인 선망 심리'의 이중성을 클래식계가 돌아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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