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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흑사병과 심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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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신종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병이 퍼질 때마다 각종 미디어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내용 중 하나가 중세 유럽을 휩쓴 흑사병에 대한 이야기다. 1346년 유럽 동부 흑해 일대에서 시작된 흑사병은 당시 교역로를 타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 단 2년 만에 3000만명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단기간에 수천만 명을 사망케 한 유럽의 흑사병은 몽골군이 러시아 크림반도를 침공할 때 세균전을 목적으로 성내로 던진, 흑사병에 중독된 사체에서 시작됐다. 아시아 전역에서는 몽골군이 세균전에 활용할 만큼 흔하던 질병이었고 대부분 문명권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겪은 전염병이었다. 중동에서 시작돼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 전역에서도 꽤 유행했으며 로마제국 시대에는 유럽에서도 수차례 퍼졌다.

전염 속도가 무서운 건 사실이지만 흑사병은 환자 격리를 철저히 하고 간호하는 사람들도 천으로 코와 입만 가리면 전파 세균의 90% 이상이 차단된다. 다른 바이러스성 전염병에 비해 차단 방법이 간단한 전염병이다. 하지만 로마제국 멸망 이후 이 병을 천 년 만에 처음 접한 유럽인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무너지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전 흑사병에 대한 의료 기록은 대부분 소실된 상태였고 방역 체계 자체에 대한 지식 또한 대부분 날아간 상태에서 각국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이 틈에 온갖 거짓된 정보가 판을 치면서 사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병이 신의 징벌이라며 채찍고문단이 유행했는데, 가뜩이나 전염병이 창궐한 상황에서 온몸에 일부러 생채기까지 내니 세균이 체내에 침투하기 더 쉬운 환경만 조성됐다.


피해가 거의 없던 사람들은 전염병에 대한 대응책이 율법으로 몸에 배어 있던 유대인이었다. 바깥에 나갔다가 오면 옷과 신발의 모든 먼지를 털고, 기도 전에 반드시 온몸을 닦으며, 정결치 못한 고기나 음식은 철저히 금하라는 율법이 자동으로 방역 체계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무너진 유럽인들은 역으로 유대인이 악마와 손을 잡고 흑사병을 퍼뜨렸다며 수많은 유대인을 화형에 처해버렸다.

결국 실제 전염병보다 무서운 것은 공포심으로 무너져내린 대중의 심리였던 셈이다. 개인 위생만 철저히 지켰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이 대참사는 오늘날 신종 전염병들과 싸우고 있는 전 세계 방역 당국들에도 방역만큼이나 심리전이 얼마나 중요하고 무서운 것인지 알려준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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