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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의 행복심리학]반려견은 왜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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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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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둥이를 든 주인의 손을 핥는 동물은 개밖에 없다. 그래서 개는 인간보다 나은 취급을 받기도 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인간보다 낫다. 개가 위기에 처한 주인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흔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개가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함께 살게 되었을 것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축은 식량과 노동력, 털과 가죽을 인간에게 제공했기 때문에 마을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도움을 주지 않고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 있다. 바로 반려동물이다. 동물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려면 몇 개의 진화적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육식동물이어서는 곤란하고 식성이 까다로워서도 안 되며 행동 영역이 지나치게 넓어도 안 된다.

개의 조상인 늑대가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온 데는 두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하나는 거주지 주변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 치우던 늑대가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사냥에 활용하기 위해 늑대를 길들였다는 것이다. 침대 위에서 뒹굴고 있는 강아지에서 늑대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먼 옛날 늑대 무리 중 일부가 공짜 먹이에 매력을 느껴 사람 곁에 머물게 되었다. 이들은 사람과 함께 살면서 위험을 알리고 사냥에 도움을 주었으며, 가축을 지켰을 것이다. 유전적으로 보면 개가 늑대 무리에서 분리된 시기는 3만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언제부터 인간과 함께 살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개는 약 1만3000~3만 년 전부터 인간과 함께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개와 인간이 교감할 수 있는 이유


우리가 개에게 남다른 애정을 쏟는 것은 사람과 교감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고양이는 인간과 감정적으로 소통하기 어렵다. 야생 고양이는 8000~9000년 전쯤 쥐를 쫓다가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인간은 고양이를 길들이는 데 실패했다. 고양이는 인간이 주는 먹이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본능을 버리면서까지 길들여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개는 인간의 식습관에 완전히 적응하면서 잡식성 동물로 진화했다. 더구나 개는 인간의 거주지에 머물기 때문에 야생 늑대와 교배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이것이 야생의 개가 자신의 본능을 버리고 인간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지역에서 발견된 암각화. 사냥꾼과 끈으로 연결된 개들의 모습이 보인다. 8,000~9,000년 전쯤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지역에서 발견된 암각화. 사냥꾼과 끈으로 연결된 개들의 모습이 보인다. 8,000~9,000년 전쯤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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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새로운 환경에 재빨리 적응했다. 개는 탄수화물 분해 효소를 만드는 유전자를 늑대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 인간이 먹는 빵이나 밥은 물론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 데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개가 인간의 안방까지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사회성 덕분이다. 인간 7번 염색체 해당하는 개의 6번 염색체는 공격성을 낮추고 사교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는 인간의 친구가 되도록 유전적으로 선택된 것이다.


개는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 뿐 아니라 주인의 감정 상태를 읽을 줄 안다. 개가 주인의 말을 알아듣는 것은 뇌에 사람의 목소리를 인식하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영역은 인간이 가진 뇌 영역과 유사하고 활성화되는 패턴도 비슷하다. 또 개는 다양한 표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표현할 줄 안다. 특히 먹이를 요구할 때 불쌍한 표정을 지음으로써 주인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개는 사람의 음성과 표정을 연결시킬 줄도 안다. 2016년 한 연구팀이 개 17마리에게 웃는 사람의 얼굴 사진과 화가 난 표정의 얼굴 사진을 보여준 다음, 반가움을 표현하는 음성과 화난 음성을 각각 들려주었다. 개들은 반가운 음성을 들었을 때 웃는 사람의 사진에 관심을 보였고, 화난 음성을 들려줄 때는 화난 사람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또 다른 실험에서는 의미가 담긴 말을 들었을 때 개의 왼쪽 뇌가 활성화 되고, 기분 좋은 말을 들었을 때 오른쪽 뇌가 활성화되었다. 이는 사람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반응이다. 또 칭찬하는 말을 들었을 때 뇌의 보상 회로가 강하게 반응했다. 이는 보상을 통해 다양한 학습과 훈련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는 주인의 냄새를 맡을 때도 보상 회로가 활성화된다. 주인과 함께 있는 것 자체가 개에게는 보상인 것이다.


■개는 주인을 닮는다


개(왼쪽)와 사람(오른쪽)이 소리에 반응하는 뇌 영역. 빨갛게 표시된 영역은 사람의 소리, 파랗게 표시된 영역은 개의 소리, 초록색 영역은 다른 소리에 활성화되는 부위를 각각 나타낸다. 개는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는 영역을 가지고 있다.

개(왼쪽)와 사람(오른쪽)이 소리에 반응하는 뇌 영역. 빨갛게 표시된 영역은 사람의 소리, 파랗게 표시된 영역은 개의 소리, 초록색 영역은 다른 소리에 활성화되는 부위를 각각 나타낸다. 개는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는 영역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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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주인의 교감은 아기와 엄마가 주고받는 교감과 비슷하다. 개의 사진을 바라볼 때와 아이의 사진을 볼 때 주인의 뇌는 똑같이 반응한다. 두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도 다른 동물은 무작정 반대편으로 피하지만 개는 주인을 향해 몸을 피한다. 이는 아이가 엄마 품을 파고드는 행위와 같다. 또 개는 영장류를 제외한 동물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과 눈을 마주 보는 동물이다. 그래서 개와 사람은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금세 알아차린다.


사람이 개에게 사랑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이 모성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Oxytocin) 때문이라는 연구도 있다. 주인이 개와 눈을 맞추고 교감을 나누면 주인과 개의 소변에서 옥시토신 농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개와 사람의 유대감은 부모와 자식 간에 느끼는 유대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늑대를 대상으로 실험했을 때는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놀라운 점은 주인과 개가 점점 닮아간다는 것이다. 예컨대 머리카락이 긴 주인은 기다란 귀를 가진 개를 좋아하고, 머리카락이 짧은 주인은 귀가 뾰족한 개를 선호한다. 실제로 2009년 일본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45쌍의 주인과 개의 사진을 보고 누가 주인인지 쉽게 알아맞혔다. 이들은 개와 주인의 눈만 보고도 74%의 정확도로 주인을 알아냈다.


개가 주인의 병을 알아차린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개의 후각을 이용하여 병을 알아내는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개가 주인의 암을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에 성공한 예도 드물지 않다. 여러 연구에 의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더 건강하며 더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개를 키우는 사람들은 스트레스나 심혈관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낮고 사망 위험도 낮다. 이는 개를 기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개와 산책하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목숨이 짧아 슬픈 짐승


개는 사람의 웃는 표정과 화난 표정, 친근한 목소리와 화난 목소리를 구분하여 반응한다.

개는 사람의 웃는 표정과 화난 표정, 친근한 목소리와 화난 목소리를 구분하여 반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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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키우면 정신건강에도 좋다. 개는 가족 이상으로 정신적 위안을 준다. 내가 힘든 상황에 처하면 가족조차 귀찮을 때가 있다. 하지만 개는 주인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도 늘 곁에 있어 준다. 더구나 개는 잔소리를 하지 않으며 주인에 대해 어떤 편견도 갖지 않는다. 개에게는 주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인이고, 도덕이며, 신이다. 가족은 그럴 수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는 주인이 살아 있는 동안 계속 곁에 있어줄 수 없다. 사람보다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대개는 15년을 넘기지 못한다.


얼마 전에 필자는 강아지를 잃었다. 잠시 여행을 떠난 사이, 강아지는 급성 췌장염 진단을 받았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강아지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 처연한 눈빛으로 필자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이미 초점을 잃은 뒤였다. 정밀검사를 위해 강아지를 병원에 맡긴 밤, 우리 가족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그가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뜨거운 화로 속에서 작은 몸이 재로 변하는 동안 아이들은 펑펑 눈물을 쏟았다.


이제 반려동물은 사회적 자본의 형태를 띠어가고 있다. 그러나 반려동물과 함께하려면 언젠가 맞게 될 이별을 준비해야 한다. 주변에서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후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내 가족이 그러했듯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고통스럽다. 반려동물이 가족의 삶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클수록 상실감은 더욱 깊다. 단언컨대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못지않다. 위안을 주었던 존재는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위안을 얻고 있다면, 그동안 자신을 지지해주었던 존재와의 이별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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