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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알파고, 그 후…

최종수정 2019.07.30 16:19 기사입력 2019.07.0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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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알파고, 그 후…

[아시아경제 정영일 디지털뉴스부장] 2016년 3월13일 서울 광화문 한 유명호텔. 인공지능(AI)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네 번째 승부가 펼쳐지고 있었다. 대국장 분위기는 암울했다. 먼저 3패를 당해 체면을 구긴 이세돌 9단은 이날 진행된 4국에서도 초반 열세를 면치 못했다. 이세돌이 전세 역전을 시도하며 보낸 기동대, 백 넉 점이 좌우 변에 형성된 거대한 흑 세력에 갇혀 꼼짝달싹도 못 할 것처럼 보였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이때였다. 이세돌은 한 칸 벌려 뛴 흑 돌 사이에 백 돌을 끼워 넣었다. 4국 78수다. 이 한 수로 견고해 보였던 흑의 세력이 허점투성이 성긴 그물로 전락했고 죽어가던 백 넉 점은 다시 생명을 부여받았다. 이세돌이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대국 해설장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중국 정상급 프로기사 구리 9단은 탄식하듯 "신의 한 수(神之一手)"라고 말했다. 이후 알파고는 '떡수(실착)'을 연달아 던지더니 결국 기권했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그 사이 알파고는 이세돌과의 마지막 5번기를 간단하게 제압했다. 인간 최후의 반란을 진압하듯. 알파고는 이후 몇 번의 업데이트를 거쳤고(알파고 리→알파고 마스터→알파고 제로) 그 사이사이 인터넷 바둑에 진출해 '매지스터' '마스터' 등의 ID로 전 세계 정상급 바둑 기사들을 줄줄이 물리쳤다. 인간계 최강 커제 9단도 무릎 꿇렸다. 커제는 완패 후 눈물을 흘렸다.


알파고의 공식 전적은 68승 1패.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승부에서 처음으로 패배한 사람이자 유일하게 승리를 거둔 사람이 됐다. 알파고가 거둔 68승에는 프로바둑 기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음 수를 논의해가며 두는 상담기 전적도 포함됐다. 알파고는 이후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더 이상 인간계의 승부에는 흥미가 없다는 듯이.


그 사이 바둑계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승리의(사실은 패배지만) 흥분은 가라앉고 '신의 한 수'는 과연 진짜로 존재했냐는 질문이 제기됐다. 오랜 복기와 논의 끝에 내린 바둑계에서 내린 결론은 아쉽게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세돌의 날카로운 창끝을 막아낼 수 있는 흑의 응수가 존재했고 알파고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세돌은 최근 유튜브 채널 '광파고TV'에 출연해 "당시 알파고는 완벽하지 않았다"라며 "기계는 실수하지 않으니 오류가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바둑의 역사 속에서 '신수', '묘수'로 불렸던 수들을 인공지능을 통해 분석해보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알파고 이후 속속 등장한 바둑 AI를 활용해 역사 속 신수가 실제로는 몇 퍼센트의 승률을 가진 수였는지 다시 돌아보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신의 한 수'로 불렸던 많은 수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그다지 승률이 높은 수는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신수'처럼 보이는 수에 놀라거나 당황해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받는다.


인공지능의 충격이 바둑계에 가져온 진정한 변화는 수천 년 바둑 역사를 지배해온 '정석(定石)'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는 불리한 수라는 '정석적 해석' 때문에 두지 않던 수를 과감하게 시도해보는 프로기사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대국 해설자들은 "알파고가 뒀던 수"라며 새로운 시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동양 정신문화의 '정수'라 불리는 바둑에 AI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알파고의 충격파를 가장 먼저 겪은 바둑계의 변화에서 AI와 함께 살아갈 미래 사회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정영일 기자 baw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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