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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 소방관을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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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경훈 기자]"제가 업무의 부름을 받을 때에는 신이시여,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제게 주소서. 너무 늦기 전에 어린아이를 감싸안을 수 있게 하시고 공포에 떠는 노인을 구하게 하소서…"

'소방관의 기도(Firemen's Prayer)'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이 시는 미국 캔자스의 한 소방관이 화재를 진압하기는 했지만 어린이 3명을 끝내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쓴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지난 2001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화재 사고 당시 순직한 한 소방관의 책상에 걸려 있다가 언론에 보도돼 큰 감동을 주면서 우리에게도 익숙해진 이 시는 특히 올해초 '현빈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막을 내린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한 장면에서 나레이션으로 소개되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얼마든지 다시 보고 또 듣고 싶지만 현실과 맞닿아서는 회자되지 않기를 바라는 이 시가 얼마전 경기도 평택시 가구전시장 화재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두 소방관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다시한번 네티즌들을 울리고 있습니다.

화재발생 신고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된 송탄소방서 소속 고(故)이재만 소방위와 한상윤 소방장. 두 소방관은 진화작업을 하다가 샌드위치패널로 지어진 건물과 매장 안에 가득한 가구들로 인한 열기와 유독가스가 너무 거세 철수하라는 명령에 따라 빠져나오던 중 무너진 천장 구조물에 깔려 압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 모든 죽음이 슬픔과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지만 소방관들의 죽음에 유독 많은 사람이 특별한 감회를 갖는 것은 자신을 희생해서 남의 생명을 구해야만하는 운명적인 직업적 특성때문일 것입니다. 남들은 불길을 피해 뛰쳐나오는데 오히려 그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하는 소방관들의 헌신성은 언제나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도 남습니다. 사람들이 그들을 진정한 '영웅'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영웅'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은 우리를 놀라게합니다.

이재만 소방위가 순직 전에 받은 월급은 400만원 정도. 본봉 240만원에 화재진화수당 8만원, 생명수당은 5만원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시간외근무수당 야근수당 휴일근무수당 등이 150만원 정도라고 합니다. 얼핏보면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남들 다 쉴 때 못쉬고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까지 목숨 걸고 일하며 받는 대가라고 생각하면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닐 것입니다.

인력부족과 장비 문제도 심각합니다. '살인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하루 24시간 맞교대에다 최신장비는 커녕 예산 때문에 여전히 노후화 된 장비를 들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야하는 게 소방관들의 현실입니다.

내년도 소방방재청 예산은 총 9400억원으로 올해보다 28%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소방관이 죽어야 조직이 산다'는 자조 섞인 말까지 들려오는 상황인데도 정작 소방관들에 대한 예산은 15% 삭감됐습니다.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소방관 처우 개선 관련 법안만 80건이 넘는다는데 대부분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목숨을 구하기위해 화마와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들에게 언제까지 희생과 인내를 강요해야 하는 걸까요. '영웅'들이 그 칭호에 걸맞는 대우를 받고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이제는 우리 모두가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차례가 아닐까합니다.

다시 한번 평택 화재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두 소방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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