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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범죄24時]들뜬 마음 짓밟은 ‘먹튀’…해외여행 사기 천태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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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돌며 '산티아고 순례' 여행객 모집해 범행
서유럽 여행 빙자해 여행객 70명 등친 여행사
여행 대금만 입금받은 뒤 도주한 골프장 캐디

코로나19가 사실상 종식되면서 해외여행이 활발해지던 지난해 7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박모씨는 성당에서 여행사 대표 공모씨(36)를 알게 됐다. 공씨가 성당 신자들을 모아놓고 열었던 여행 설명회에서였다.

공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여행사를 산티아고 순례 전문 1인 업체라고 소개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프랑스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까지 예수의 제자 야고보가 복음을 전하려 걸었던 길로, 무려 800㎞에 달하지만 성지로 여겨지며 해마다 많은 여행객이 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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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심 악용해 여행객 모집…출발 일주일 전 취소

평소에 산티아고 순례에 관심이 있었던 박씨는 공씨의 설명에 홀린 듯이 여행을 예약했다. 1인당 1000만원가량이 필요했지만, 다른 여행사들에 비하면 비교적 저렴한 가격이었다.


그런데 출발을 불과 일주일도 채 남겨두지 않았던 8월31일 문제가 터졌다. 42박44일 일정으로 예정됐던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이 취소됐다는 통보가 온 것. 박씨가 당황한 것도 잠시, 공씨에게 예약을 했던 다른 여행객들 사이에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공씨가 현지 숙소뿐 아니라 항공권도 예약하지 않았으며, 여행 경비를 사적으로 썼다는 것이었다.

박씨를 비롯한 여행객들은 공씨에게 대금 반환을 요구했지만, 공씨는 “연말에 여행 경비를 추가로 받으면 돌려주겠다”고 둘러대며 시간을 끌었다. 대금 반환이 늦어지자 결국 경찰에 고소하는 여행객들이 늘어났고, 서울 광진경찰서에서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에 따르면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피해자만 25명, 피해 금액만 2억5000여만원에 달했다. 피해를 본 여행객 중에는 은행 대출을 받거나 퇴직금을 받아 예약한 경우도 있었다. 경찰은 공씨를 한 차례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이 “도주 우려가 적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결국 공씨는 지난해 9월29일 사기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됐다.

일방적 취소 통보…하루 만에 영업 중단한 여행사

이보다 앞선 지난해 2월에도 서울 강남에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한 중소 여행사가 여행상품 구매자들에게 ‘사정으로 인해 모든 여행상품의 행사 진행이 어려워 부득이 일괄취소 처리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문자를 발송한 뒤 하루 만에 영업을 중단했다. 해당 여행사는 온라인을 통해 발칸 반도나 스위스 등 유럽 여행 상품을 판매해 오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통보를 받게 된 소비자들이 회사로 전화를 걸어 상황 파악에 나섰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안내 메시지에는 환불에 대한 공지는 전혀 없었다. 한 피해자 정모씨(가명)는 아내와 이집트 여행을 위해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금 포함 총 479만8000원을 지불했다. 잔금인 419만8000원은 여행사가 영업을 중단하기 전날 지불했다. 정씨는 “소비자 입장에선 계획적인 사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본격 여름휴가철에 돌입한 28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찾은 해외여행객들이 출국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본격 여름휴가철에 돌입한 28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찾은 해외여행객들이 출국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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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로 여행상품을 결제한 소비자들은 그나마 카드사를 통해 돈을 돌려받았지만, 계좌로 송금한 소비자들은 본사와 연락조차 되지 않아 환불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결국 피해자들이 오픈 채팅을 열어 집단소송을 진행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사건을 접수한 서울 강남경찰서는 업체 대표인 70대 양모씨를 사기 혐의로 입건해 같은 해 3월28일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 사실이 밝혀진 고소인만 70명으로, 피해 금액도 1억7000만원이나 됐다. 대표 양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영 사정 악화로 여행 상품 진행이 어려워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태국 여행 싸게 갈 수 있다” 두 얼굴의 골프장 캐디

그런가 하면 같은 기간 서울 혜화경찰서에는 장모씨(30대 후반)에 대한 고소장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던 장씨는 골프장 회원이나 동료들을 상대로 자신이 여행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저렴한 비용으로 태국 여행을 보내줄 수 있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그렇게 2022년 10월부터 12월까지 장씨에게 속아 돈을 건넨 인원만 26명. 피해자마다 적게는 130만원에서 많게는 350만원까지 입금했지만, 여행을 떠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장씨는 여행 대금 명목으로 받은 4100만원을 자신의 채무를 변제하거나 생활비, 도박자금 등으로 탕진했다.


피해자들의 고소로 지난해 2월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장씨는 자취를 감췄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장씨를 추적하던 경찰은 잠복 수사 끝에 수사 착수 4개월만인 지난해 6월7일 여자친구 집에서 은둔 생활을 이어가던 장씨를 체포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장씨는 구속 상태로 검찰에 송치됐으나, 피해자들의 피해는 전혀 회복되지 못했다.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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