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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섭의 금융라이트]금발머리 소녀와 미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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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인플레 낮아지는데 고용은 탄탄해
월가에서도 "골디락스" vs "시기상조"

편집자주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영국 동화책 '골디락스와 세마리 곰' 표지.

영국 동화책 '골디락스와 세마리 곰'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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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세종=송승섭 기자] 최근 미국 월가에서 가장 핫한 논쟁 주제를 꼽으라고 한다면 ‘골디락스(goldilocks)’가 있을 겁니다. 미국과 세계 경제가 골디락스로 향할 거라는 기대감과 시기상조라는 비관론이 있었죠. 골디락스는 무엇이고 왜 지금 논란이 된 걸까요?


골디락스는 영어로 ‘황금색 머릿결’이라는 뜻으로 영국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에서 유래됐습니다. 골디락스는 주인공인 금발 소녀의 이름이고요. 골디락스가 자주 언급되는 건 전래동화의 특이한 내용 때문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골디락스는 어느 날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외딴 오두막을 발견했습니다. 주인은 세 마리 곰(아기·엄마·아빠 곰)이었는데 집에 없었죠. 오두막에 들어가 보니 식탁에 세 그릇의 수프가 있는 것 아니겠어요? 하나는 막 끓인 뜨거운 수프였고, 다른 하나는 완전히 식어 차가웠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먹기 적당한’ 온도의 수프였죠. 배고팠던 골디락스는 적당한 수프를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졸렸던 골디락스는 침대에 누우려고 침실에 들어갔습니다. 침실에는 아주 딱딱한 침대, 아주 흐물거리는 침대, ‘딱딱하지도 흐물거리지도 않은 적당히 편안한 침대’가 있었습니다. 적당한 침대에서 골디락스는 낮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곰들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 보는 소녀가 몰래 수프를 먹고 잠까지 자고 있으니 곰들은 화가 났겠죠. 곰들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골디락스는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깨어나 도망쳤습니다.

극단을 배제하고 적절함을 선택하는 골디락스 이야기는 다양한 비유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UCLA 앤더슨 포캐스트 수석경제학자인 데이비드 슐먼이 1992년에 처음 썼습니다. 이상적인 고용률을 유지하면서, 물가상승률도 적당히 낮고, 경제성장률이 건실하고 높은 상황을 일컫는 의미로요. 당시 미국 경제는 큰 인플레이션 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죠. 골디락스라는 말을 세간에 널리 퍼뜨린 건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입니다. 2004년 중국의 인플레이션 없는 고성장을 골디락스라고 표현했죠.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골디락스 기대감이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금리가 높고 저성장이 우려된다는 전망이 가득한데 말이죠. 미국의 희한한 경제 상황 때문입니다.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점차 낮아지고 있는데 고용시장은 개선되고 있습니다. 미국시간으로 1월 12일 노동부가 발표한 12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달보다 0.1% 떨어졌습니다. 물가지수가 한 달 전 보다 낮아진 건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시작한 2020년 5월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골디락스 흔적 보여" vs "과도하게 낙관적"

물가가 낮아졌다는 건 통상적으로 경기침체(실업률 증가) 시그널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12월 고용보고서를 보면 오히려 고용상황이 나아졌습니다. 비농업일자리는 1년 전보다 22만3000개 늘었는데 애초 전망(20만5000개)보다 많습니다. 실업률은 한 달 전보다 0.1%포인트 내린 3.5%였는데 54년 만에 가장 낮고요. 1월 신규 일자리는 51만7000개로 전망치(18만7000개)를 3배 가까이 상회했습니다. 1969년 이후 실업률은 역대 최저일 정도로 호황입니다.


이에 곳곳에서 골디락스로 향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블룸버그 소속 이코노미스트 애나 웡과 엘리자 윙어는 “(미국의) 12월 일자리 보고서는 골디락스 흔적처럼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스위스쿼트 은행의 선임 애널리스트인 이펙 오즈카데스카야는 “인플레 완화와 강한 노동시장이 골디락스 시나리오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얘기했고요. 찰스슈왑의 리즈 안 손더스 수석 투자전략가는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경기 침체를 피하면서 빠르게 하락하는 것은 골디락스 시나리오”라고 기고했습니다.

하지만 골디락스는 평생 가는 게 아닙니다. 동화 속 골디락스도 맛있는 수프와 편안한 침대에 누워 달콤한 낮잠을 즐겼지만, 이윽고 찾아온 곰들에게 깜짝 놀라 달아날 수밖에 없었죠. 미국도 그랬습니다. 부동산 시장의 호황으로 골디락스를 누린 미국은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골디락스라며 자화자찬하던 미국의 경제는 사실 거품경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고요.


지금 골디락스를 언급하는 건 성급하다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시장이 왜 인플레이션을 그렇게 낙관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비판했습니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역시 “인플레이션은 다시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스탠다드차타드(SC)는 “현재 시장에서 번지고 있는 골디락스 시나리오는 과도하게 낙관적인 것 같다”면서 “”위험 자산에 대해 신중한 태도로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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