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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민영화20주년] 통신 불모지서 ICT 강국으로…대한민국 연결하다

최종수정 2022.08.16 15:06 기사입력 2022.08.16 13:00

1981년 한국전기통신공사 출범…유선전화부터 위성까지
올림픽·월드컵·이산가족 상봉…역사적 순간에 'KT' 있었다

구현모 KT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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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수연 기자] 1981년 통신 불모지에서 탄생한 KT(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는 2002년 민영화를 거치며 한국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을 이끌어 왔다. 초고속 인터넷, 무선통신, 위성, 해저케이블 등 육해공을 망라해 대한민국을 연결하고, 통신 산업을 선도했다. 국가 경제 성장과 역사의 순간을 함께하면서 국민과 희로애락을 나눴다.


통신 불모지에서 출범…대한민국을 연결하다

137년 전 한국전보총국 개국을 KT의 전신으로 볼 수도 있지만, KT라는 기업의 본격적인 출발은 1981년 12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출범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는 빠른 경제성장과 국민 생활 수준 향상으로 전화 수요는 폭증했으나, 공급량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상황이었다. 현재 KT의 모태가 되는 한국전기통신공사가 1981년 12월 10일 체신부에서 분리해 출범하게 된 이유다. 통신 시장의 급속한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 기관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고 민첩한 기업이 적합했기 때문이다. 한국전기통신공사의 출범은 정보통신 분야의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발전을 이루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전기통신공사는 1984년 세계에서 10번째로 전자교환기 TDX-1을 자체개발하고, 1986년 상용 개통했다. 외국에 의존하던 교환설비를 자체 생산하면서 만성적인 전화 적체를 해소하고, 전국적으로 전화를 보급하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987년 9월에는 전국 전화 1000만 회선을 구축하며 '1가구 1전화 시대'가 실현됐다. 전화 가입자는 꾸준히 증가해 1995년에는 100명당 전화 보급률이 40명을 넘어서며 선진국에 근접한 수준으로 성장했다. 1999년에는 TDX-100을 개통해 전전자교환기(TDX) 자립화와 함께 한국 정보통신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무선통신의 역사에도 KT가 함께한다. 1982년 소위 '삐삐'라 불리던 무선호출기 공급을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인 1984년에는 셀룰러 방식의 차량전화서비스를 개시했다. 당시 '카폰'이 큰 인기를 끌어 무선통신에 대한 고객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한국통신은 이동통신 사업의 전문성 확보와 이용자 편익 강화를 위해 1984년 한국이동통신(현 SKT)을 설립했고 이동통신 서비스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한국통신은 1996년 PCS 사업권을 획득하고 '한국통신프리텔'을 창립했다. 1997년 10월 서비스 출시 후 6개월 만인 1998년 4월에 가입자 100만 명을 넘어섰다. 1984년 2658명에 불과했던 전체 이동전화 가입자 수도 1998년 6월 1000만 명을 넘었다. 1999년 9월에는 무선전화 가입자(2156만 명)가 일반 유선전화 가입자(2104만 명) 추월하는 등 통신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었다. 이후 한국통신은 2000년 한솔엠닷컴을 인수해 2001년 통합법인인 'KTF'를 출범시키며 이동통신서비스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구축했다.

사진=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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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 인터넷부터 무궁화위성 발사까지…IMF 버팀목

1990년대의 초고속인터넷의 발달은 암울했던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시대의 버팀목 중 하나였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도 이메일, 검색 등 정보를 얻는 새로운 창구로서 국민 생활에 변화를 이끌었다. 1990년대 월드와이드웹(www)이 등장하면서 인터넷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조짐을 보이자 한국통신은 1994년 인터넷 상용서비스를 '코넷(KORNET)'을 개시하며 새로운 인터넷 시대에 대비했다.


2000년 5월 초고속 인터넷 '메가패스'를 출시했고, 그해 9월 가입자 100만을 돌파했다. 출시 약 1년만인 2001년 6월에는 메가패스 300만을 돌파하기도 하면서 초고속인터넷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인터넷 기술 측면에서 업로드보다 다운로드의 고속화가 중요해지면서 ADSL(비대칭 디지털 가입자 회선)이라는 '초고속인터넷'이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됐다. 이에 발맞춰 한국통신은 1999년 12월 ADSL 상용서비스를 시작했고, 이후 ADSL 분야를 2년 만에 세계 1위로 키웠다


사진=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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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과 1996년에는 무궁화위성 1·2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하면서 상용 위성 보유국 대열에 합류해 우주 시대를 열었다. 이어 1999년 무궁화위성 3호기를 발사해 최첨단 통신·방송 서비스를 누릴 수 있게 됐다. 특히 2000년 1월 1일 국내 방송 3사가 주관하는 뉴 밀레니엄 해돋이 장면 생중계에 최초로 활용됐는데 이는 우리나라 국적의 위성을 이용해 TV 생중계를 한 첫 사례다. 이후 KT는 2001년 '한국통신'에서 'KT'로 사명을 변경하고 민영화에 시동을 건다.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시초다.


역사적 순간에 'KT' 있었다…희로애락 함께한 국민 기업

KT는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순간에도 함께했다. 88 서울 올림픽에서는 독자 기술로 개발한 경기 운영시스템, 종합 정보망서비스 등을 통해 생생한 경기 장면을 생중계했다. 특히, 국내 통신기술 수준을 세계에 알리고자 국산 전전자교환기(TDX)를 이용해 한강 조정경기장에 3000회선 규모로 컨테이너 타입의 이동전화 시설을 공급했다. 국제 TV 중계는 총 27회선을 운용해 9200시간 11분으로 중계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200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이 역사상 처음 4강 진출 신화를 쓴 것과 더불어, 역대 최고의 IT 월드컵을 일궈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KT는 통신 총괄 주관기관으로 당시 3G 서비스를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음성 위주 모바일 서비스에서 벗어나 고속 데이터와 영상 서비스를 실현했다. 월드컵 공동 개최국인 한국과 일본이 이동전화 단말기를 통해 국제 영상통화를 최초로 선보여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남북 화합의 순간에도 KT가 있었다. 남북 간 통신망은 1948년 소련군에 의해 끊어진 이후 60년간 연결되지 못한 상태였다. KT는 2004년부터 개성공단 사업의 일환으로 북한의 조선체신회사와 남북 간 통신망 연결을 위한 협상을 시도했다. 2005년 7월 KT 문산지점과 북한의 개성전화국으로부터 뻗어 나온 광케이블을 연결하고 남북한 광통신망 시대를 열었다.


2005년 8월 15일 KT의 통신 지원 속에서 남북 이산가족 화상 상봉이 이뤄졌다. 역사적인 만남을 위해 KT는 연인원 2000명의 인원을 투입해 24시간 대기하며 3원화된 통신 장비를 운용했다. 이후에도 전국 9개 지역에 13개 상봉장을 구축·운영하면서 네 차례에 걸쳐 화상 상봉을 성공적으로 지원했다. 2005년 12월에는 남북한 직접 통신망을 개통하는 동시에 개성공단에 KT 지사를 설립했다.


오수연 기자 syo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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