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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 을이 갑에게 떳떳하게 요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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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정부와 국회가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재추진하면서 찬반논쟁이 거세다.


원청(대기업)과 하청(중소기업)간 거래에서 원자재 가격 변동분을 자동으로 납품 단가에 반영하도록 하는 제도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 중소기업계 주도로 도입이 추진되었지만, 의무적인 가격 조정이 시장 작동원리와 맞지 않는다는 대기업과 공정거래위원회의 반대로 무산됐다.

14년 만에 이 제도가 다시 불려나온 이유는 다들 아는 그대로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자재가는 계속 오르는데, 계약서대로 6개월~1년씩 단가 변경 없이 원가 상승을 이윤감소로 고스란히 흡수하기에는 중소기업들 형편이 너무 절박하다.


무산된 납품단가 연동제 대신 2009년에 나온 '납품대금조정협의제'가 있다. 계약서에 단가 조정 요건을 넣고, 조정이 필요하면 중소기업중앙회가 하청업체 대신 원사업자와 협상하는 방식인데, 실효성이 낮았다.


강제성도 없고, 조정을 신청했다가 밉보여서 거래가 끊길 것을 각오해야 했으니, 시행 이후 13년간 이 협의제를 활용한 조정 신청 건수 0건이라는 저조한 성적이 놀랍진 않다.

납품 계약서에 단가변동 조항 추가 자체도 어렵고, 설령 있어도 변동이 결코 쉽지 않은 갑을 관계의 매운맛 현실은 지난 5월 발표된 공정위의 실태조사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난다.


철, 알루미늄, 제지 등 가격 급등 원자재를 많이 쓰는 중소기업, 건설업체 등 2만여 곳에 설문지를 뿌려서 401곳에서 답변을 받았는데, 계약서에 변동조항이 없거나 아예 조정 불가능이라 못 박은 경우가 38%였다.


원청이 하청의 조정요청에 응해서 협의가 개시되는 경우는 51%에 불과했고, 협의를 해도 원자재가 상승분이 전혀 단가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응답도 42%나 됐다. 실상이 이러니 중소기업계에서 하도급법 개정을 통한 단가 연동제의 강제화를 열망하는 것이다.


공정위와 대기업의 반대는 지금도 여전하다. 공정위는 뒤늦게 납품대금조정협의제의 효과를 확인하겠다며 10만개 기업을 대상으로 단가 조정 현황을 조사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에 따른 경제적 영향' 보고서를 통해 원자재 가격이 10% 상승했을 때 이를 납품가격에 반영하면 국내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대기업 수요는 1.45% 감소하고, 대신 해외 중소기업 제품에 대한 수요는 1.2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게다가 대기업이 납품단가 상승에 따른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제품 값을 올리면 소비자물가지수가 14% 상승하고 소비는 0.14%, 투자는 0.25% 감소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대로라면 납품단가 연동제는 국가경제에 끼치는 해악이 엄청나다.


최근에 만난 한 중소기업인은 “을의 위치에서 늘 버텨 와서 지금도 버티고는 있지만, 원청 고객의 눈치를 봐가며 원가상승분에 턱없이 모자라게 올려 받는 선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프다”며, “연동제가 만병통치약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중소기업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될 것”이란 기대를 내비쳤다.


하도급법이 있기에 동반성장 상생경영이 빛 좋은 구호로만 머물지 않는다.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을 위한 법 개정 논의가 사회적 공감대를 얻으며 속히 결론이 나길 기대한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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