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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러시아 상상할 수 없는 야만" '젤렌스키 국회 연설 통역' 올레나 쉐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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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 국회 화상 연설 동시통역자…우크라이나 참상에 울컥하기도
"가족 일부 아직 우크라이나에 있어…연락 안될 땐 많이 힘들어"
"대통령 연설문 사전에 받지 못해 즉석으로 통역"
"우크라이나 참상보고 안타까움과 무력함 느껴"
"국회 연설 참석률 저조…이해되는 측면 있지만 아쉬워"
"전쟁 해결 안되면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어…국제 사회 한 목소리 내야"

올레나 쉐겔 교수는 13일 인터뷰를 통해 전쟁은 비극이자 위험이라고 말했다. 사진=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 제공

올레나 쉐겔 교수는 13일 인터뷰를 통해 전쟁은 비극이자 위험이라고 말했다. 사진=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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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강우석 기자]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비극 그 자체다. 그리고 동시에 위험 그 자체다."


올레나 쉐겔 한국외국어대 우크라이나어과 교수는 인터뷰 내내 이 점을 강조했다. 한국에서만 22년을 지낸 쉐겔 교수는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야만 행위를 방조할 경우, 미래에는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또렷한 한국어로 말했다.

쉐겔 교수는 지난 1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대한민국 국회 화상 연설에 동시통역자로 나섰다. 이 자리에서 그는 연설 막바지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마리우폴 현지 상황을 담은 영상을 보고 울컥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타라스 쉐브첸코 국립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한 쉐겔 교수는 13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 뒷 이야기부터 시작해 우크라이나를 위한 국제사회의 역할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쉼없이 쏟아냈다.


그는 인터뷰 막바지 "부모님은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하셔서 크로아티아에 있다. 거기서 작은 펜션에서 일을 하시면서 지내고 있다"며 "부모님을 한국에 모시고 싶지만 부모님은 전쟁이 끝나면 빨리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고 싶어 하셔서 못 모시고 있다. 이번 여름은 일단 지내보고 가을 전까지도 전쟁이 끝나지 않으면 부모님을 한국에 모시고 싶다"며 안타까워 했다. 다음은 쉐겔 교수와의 일문일답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친(親)러시아 반군 병사가 무차별 폭격으로 뼈대만 남은 아파트 앞을 지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 친(親)러시아 반군 병사가 무차별 폭격으로 뼈대만 남은 아파트 앞을 지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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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국회 연설 동시통역을 맡았다. 맡게 된 과정이 어떻게 되나.

▲한국에 한국어를 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여러 명 있지만 제가 한국에 굉장히 오래 있었기도 했고 또 경험이 많으니까 이런 우크라이나 관련 업무가 저한테 다 들어오는 편이다. 2006년에 빅토르 안드리오비치 유센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도 통역을 맡았고 국회의원 대표단이 와도 통역을 맡는 편이다. 이번에도 주한우크라이나 대사관 통해서 통역 의뢰가 들어와서 맡게 됐다.


-사전에 대통령 연설문을 받지 못했다고 들었다.

▲맞다. 자료를 하나도 못 받았다. 수시로 연설 관련 자료를 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아무래도 우크라이나는 전시 상황이니까 준비가 늦어져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듣고 통역을 했다. 원래 최소한 어떤 내용인지 순서가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파악하고 통역을 하는데 이렇게 자료를 하나도 받지 못한 것은 처음이라 제가 해 본 번역 중에 가장 힘든 통역이었다. 또 대통령께서 말씀이 엄청 빠르시더라(웃음). 정말 최선을 다했다.


-연설 막바지에 마리우폴 참상 담은 영상이 나오면서 울컥하는 모습 보였다.

▲마음이 복잡했다. 우선은 일단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매일같이 그런 고통에 처해 있는데 사실 타국 사람들은 그런 영상을 볼 때는 안타깝고 울컥하고 하지만 끝나면은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저조차도 옛날 아프카니스탄이나 시리아나 그런 곳의 전쟁 뉴스를 볼 때 보면은 참 불쌍하고 안타깝지만 뉴스를 끄는 순간 머리에서 사라져버리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감히 한국 사람들한테 무조건적인 지지와 호소 같은 것들을 요구하고 기대할 수 있는가 하는 무력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무력감에 눈물이 난 것 같다.


또 다른 마음은 오로지 엄마로서, 저도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우크라이나에서 학대받고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나면서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팠다. 부모의 심정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만국공통의 감정이지 않나.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았다.


-가족이 아직 우크라이나에 있는 것으로 안다. 상황이 어떤가.

▲현재 부모님은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해 크로아티아에 계신다. 그런데 외삼촌 가족은 아직 우크라이나에 있다. 연락은 하고 있지만 폭격이 있거나 하면 지하실에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연락이 안될 때가 있다. 한참 연락이 안될 때면... 그냥 지하실에 내려가 있나보다,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곤 하는데 솔직히 많이 힘들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화상연설을 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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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대통령이 연설에서 한국에 무기 지원을 요청하는 발언을 했다. 지난 8일에도 우크라이나 측이 무기 지원을 요청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인도적 지원만 가능하다며 완곡하게 거절한 바 있다. 어떻게 보고 있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무기 지원 요청한 것은 그것이 우크라이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크라이나 남부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동부 국경에서는 러시아가 병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동부에서 더 새로운 공격이 시작될 거란 징조다. 앞으로 전쟁은 훨씬 더 잔인해질 것 같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무기도 부족하고 탄약도 부족하고 이런 상황이니 무기 지원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가 무조건 무기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원을 해줄지 안 해줄지는 대한민국 정부가 결론을 내려야 되는 부분이다. 그런데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대한민국이 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제 무기를 도입한 적이 있다. 그 무기들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무기들은 현재 다른 한국 무기들과 시스템이 다르기도 하고 오래됐기도 해서 한국의 국방력에 큰 지장을 주지 않을 것 같다. 우크라이나는 오히려 그 러시아제 무기들을 미국제 무기보다 훨씬 더 많이 만져보고 익숙하기 때문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물론 저는 군사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무조건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그냥 개인적인 생각이다.


-11일 연설 당시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국회의원 참석률이 저조했다.

▲사실 현장에서 국회의원 분들이 별로 몇몇 안 오신 것을 보고 좀 안타까웠다. 왜 그렇게밖에 못 오셨는지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연설이 급하게 추진된 면이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 분들이 일정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이해를 한다.


-연설 끝나고 국회의원들과 우크라이나 현안 관련해서 따로 이야기 나눈 것 있나.

▲저는 없었다. 왜냐하면 연설문을 사전에 받지 못했기 때문에 연설이 끝나자마자 연설문을 번역하기 바빴다. 언론이나 국회에서 빠르게 연설문을 번역해달라고 요청이 와서 번역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국제 사회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나토(NATO)라든가 국제연합(UN)이라든가 유럽연합(EU)이라든가 이런 국제 사회가 적절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UN이 설립되면서 만들어진 세계 질서가 대략 15년 전부터 위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그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그 세계 질서 위기가 부각되고 있다. 예컨대 유엔 안보리에서 결론을 내리려고 하면 러시아가 막아버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계속 전쟁은 지속되고 피해자는 늘어난다. 그래서 저뿐만 아니라 다른 전문가들도 이야기하는 것이 이제 새로운 세계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굉장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선례에 따라서 무언가를 처리하는 것은 가능한데 새로운 무언가를 도입하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워 한다. 이런 식이면 현재 국제 질서 위기는 점점 심해질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우크라이나 관련 활동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활동에 적잖게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활동은 어떤가.

▲사실 지금은 학기 중이라 적극적으로 참여를 못하고 있다. 학교가 본업이다보니 학교에 일이 많아서 현재는 참여를 잘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말씀드리면 요즘 재한 우크라이나인 단체를 표방해서 발언을 하는 단체들이 조금씩 있다. 정치적으로 혹은 사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남용하는 사람이 점점 생기고 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변화를 원하는데 러시아에 대한 견제는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이건 절대 재한 우크라이나 공동체의 입장이 아니다. 이런 부분이 안타깝고 아쉽다.


또한 현재 '재한 우크라이나인'으로만 이뤄진 단체나 조직은 없다. 한국에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중 60~70%가 유학생들이다. 사실 조직이나 단체를 만들면 장기적으로 가야 하는데 유학생들은 단기로 한국에 머무니까 제약이 많다. 또 각자의 본업이 있기 때문에 조직이나 단체를 꾸리기가 쉽지 않다. 현재 있는 조직이나 단체는 한국 단체들이 먼저 나서서 연대를 형성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우크라이나 이슈가 뜨겁다. 평화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또 개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전쟁 상황은 정말 21세기에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야만적이다. 그런데 전 세계 200개 가량의 국가들이 러시아의 이해할 수 없는 야만행위를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 사회가 하나로 연결돼서 전쟁은 안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안 된다 라고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각자의 순간적이고 단기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전 세계가 입장을 일치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런 것이 가장 안타깝고 화가 난다. 그리고 동시에 굉장히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 이런 상황을 유심히 바라보는 여러 국가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미래에는 전 세계가 전쟁에 휘말릴 수도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전쟁 했는데 우리라고 왜 못해 이런 식으로 전쟁이 계속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도 결국은 지금 세계가 단결해 하나의 메세지를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러시아는 전쟁을 멈춰야 한다. 변화해야 한다. 이렇게 메세지를 냄으로써 현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강우석 기자 beedolll9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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