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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10분의1 토막은 기본…탈원전 직격탄에 아사 직전” [무너진 원전생태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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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드라이브에 업계 줄폐업…기술 개발도 제자리걸음
한수원 36년 경력 원전전문가 "할 말 많았지만 털어놓을 곳 없었다"
“공급망 뿌리부터 무너져…생태계 복구에만 상당한 시간 걸릴 것”

“매출 10분의1 토막은 기본…탈원전 직격탄에 아사 직전” [무너진 원전생태계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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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세종=이준형 기자] "국내 원전업체들은 아사 직전입니다. 원전 부품업체를 운영하던 지인은 지난해 극단적 선택까지 하셨어요. 한국수력원자력 후배들도 사기가 많이 꺾였습니다."


서울 금천구에 본사를 둔 전력설비 업체 Y사의 L본부장. 그는 1977년부터 2013년까지 한수원에서 엔지니어로 일한 원전 전문가다. 1978년 준공된 국내 첫 상업원전 고리1호기부터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출까지. L본부장은 한수원에 몸담았던 36년간 한국 원전사를 바로 옆에서 겪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대해 "할 말은 많은데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고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확보했던 국내 원전 생태계가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017년 정부가 탈원전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자 금성하이텍 같은 주변 원전업체들은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고 문을 닫는 회사도 하나씩 늘었다. 급기야 지난해 11월에는 한수원 우수협력사 대표였던 지인이 빚에 시달리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탈원전 직격탄에 수주 급감

중견기업 Y사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이 회사는 한국전력, 한수원 등 굵직한 에너지 공기업을 고객사로 뒀지만 지난 5년간 성장이 아닌 생존에 방점을 찍어야 했다. 한때 매출 3분의 1을 차지했던 한수원 계약이 사실상 증발해서다. 2013년 173억원에 달했던 원전 부문 수주액은 정부의 탈원전 기조가 본격화한 2018년 14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수주액은 30억원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회사 주축이었던 원전 사업은 수년째 답보 상태다.


기술 개발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Y사는 한수원 협력사 중 최고 수준의 안전 등급인 Q(Quality) 등급을 받았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았던 업체다. 하지만 원전 사업이 축소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와 전력설비 시험·정비 용역으로 사업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에 원전 부문 연구개발(R&D) 인력도 대부분 다른 사업부로 이동했다.

인력 이탈도 피할 수 없었다. 원전 사업이 한창 성장가도를 달리던 당시 200명이 넘었던 직원수는 현재 120여명으로 줄었다. L 본부장은 "2017년 건설이 중단된 신고리 5·6호기 이후로 한수원 발주 물량은 거의 없었다고 보면 된다"면서 "(원전) 업종 자체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해 스스로 그만둔 이들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도급 업체는 줄폐업

Y사는 그나마 사정이 나았던 편이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 탈원전 기조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상당한 성과다. Y사보다 매출 규모가 작은 기업들은 사업을 다변화할 체력이 부족해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Y사와 같이 일하던 하도급 업체가 줄폐업하고 일부 부품이 단종됐다. 원자재, 물류비도 한수원과 계약한 시점보다 2~3배 이상 뛰었지만 계약에 원가 상승률을 그대로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L본부장은 "계약 후부터 관련 인력을 유지해야 하지만 지연 기간에 따른 인건비 부담은 보상 받을 수 없다"면서 "계약 불이행시 블랙리스트에 올라 손해를 보더라도 해결을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원전 산업의 메카로 꼽혔던 창원을 비롯한 경남 지역의 타격은 더 컸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경남 소재 270여개 원전 협력 업체의 매출은 2016년 16조원대에서 2018년 10조원대로 급감했다. 실례로 창원에 위치한 원전 부품업체 A사는 지난해 원전 생산라인을 일반 산업용 라인으로 전면 교체하고 원전 사업을 사실상 중단했다. A사 대표는 "신고리 5·6호기 납품이 거의 마무리 되면서 국내 원전 수주는 사실상 종료됐다"며 "이후 업종을 전환한 업체가 창원 인근에서만 수십 곳에 달한다"고 말했다.


국내 첫 상업원전 고리1호기. 2017년 영구정지됐다. [사진 = 아시아경제DB]

국내 첫 상업원전 고리1호기. 2017년 영구정지됐다. [사진 = 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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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생태계가 뿌리부터 망가진 만큼 다른 업체도 공급망 차질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원전은 1기에만 부품 약 200만개가 들어가 여러 중소 제조업체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공급망을 구성하고 있다. 원전 기술은 진입장벽도 높아 지난 5년간 붕괴된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만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당장 한수원도 원전 인력 상당수가 타 부서로 분산된 상황이다. 지난 5년간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꾸준히 확대한 반면 원전 사업은 축소한 결과다. 또 한수원은 ‘잉여 인력’이 된 국내 원전 전담인력 대다수를 이집트 사업팀 등 해외수출처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이준형 기자 gil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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