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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시각]여성노동 역사,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최종수정 2022.01.19 12:19 기사입력 2022.01.19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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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은 1970년대 여성 노동을 되짚어 본다. 복기 대상은 청계피복노동조합원. 배움터인 노동교실 폐쇄에 저항하다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희생양 담론을 활용한 억지였다. 당시 여공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꿈을 접어야 했다. 가족의 생계와 남자 형제들을 위해 노동했다. 고향으로 월급을 고스란히 송금해 희생양 담론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정부는 순진한 여공들을 외부세력이 의식화 교육으로 꾀어내 빨갱이로 만들었다는 주장을 폈다. 순종과 희생의 규범에서 벗어났다며 처벌 대상으로 인정했다.


희생양 이미지로는 여공들의 감정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무채색으로 그녀들의 희생을 당연시해서다. 가족과 남자 형제들을 위해 희생하고 감내한 수동적 주체로 규정하게 한다. 독자적 욕망과 자립적 의지를 잃은 주체로 고정하기도 한다. 실제로는 정반대였다.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사수 투쟁에 참여한 여성들은 스스로 저항을 선택했다. 하나같이 개인적 희망을 위해 결단을 감행했다. 이영재 한양대 제3섹터연구소 연구교수는 저서 '공장과 신화'에서 "대부분의 노동사 서술은 여성 노동자의 취직, 공장 진입에 대한 천편일률적 담론을 재생산했다"고 지적했다. "희생양 담론만으로는 그녀들이 자립적 독립과 독자적인 욕망을 위해 얼마나 도시와 공장을 동경했는지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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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노조 여성들은 투쟁 현장 밖에서도 능동적이었다. 꿈을 이루려고 이른 결혼을 거부했고, 다양한 교육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개개인의 삶을 관통해 구체화한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젊음이 담긴 사진에서 투쟁이나 저항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심전심으로 싹튼 우정과 자기 계발로 홀로서는 진취적 기운만 서려 있다. 회상에 젖어 들려주는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국어 선생님이 기억나요. 한문을 가르쳐주셨죠. 하루는 숫자를 알려주셨어요. 그때는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 꼭 한문을 써야 했어요. 그래서인지 통장을 하나 만들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죠. 그 안에 있는 돈을 찾고 다시 넣으라는 숙제도 내셨어요. 돈을 넣고 빼는 방법을 알려주신 거죠. 그때의 뿌듯함과 행복을 잊지 못해요. 이전까지는 도시락 가방에 동전을 넣어 다녔거든요. 그럴 필요가 없어졌죠. '역시 배우는 건 좋은 거구나' 생각했어요. 삶에 자신감이 생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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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는 한문투성이인 근로기준법을 보고 "내게 대학생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이라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만큼 당시 노동자들에게 노동운동은 멀게 느껴졌다. 여성 노동자들은 뒤늦게 교육에 눈을 떠 자신들의 손으로 민주노조를 건설하고 단체행동에 나설 수 있었다. 이들에게는 전태일에게 없던 친구도 있었다. 전태일 분신에 충격을 받은 대학생들과 열악한 여공의 현실을 목격한 종교인들이다.

여성 노동자 간 우정도 빠질 수 없다. 195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유독 이름에 '순'자가 많다. 그래서 식모는 '식순이', 버스안내양은 '차순이', 여공은 '공순이'로 불렸다.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지배한 세상은 한데 묶어 '삼순이'라고 비하했다. 이름과 달리 순하게 살 수 없던 인생들. 장기간 농성과 투쟁은 헤게모니 쟁탈을 좇는 욕망이 아니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한 처절함이자 타인을 위해 희생을 기꺼이 무릅쓴 숭고함이었다. 서로를 알아봤기에 똘똘 뭉쳐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잘 살아왔다"고 되뇌며 또 한 번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자!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흔들리지 않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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