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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빌리지] 고무에 대한 인류의 집착 축복이자 재앙이었다

최종수정 2021.10.21 14:09 기사입력 2021.10.2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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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필요하지만
억울한 희생 많았던 물질
천연고무 원산지
아마존 놓고 쟁탈전
英·佛·美·벨기에 등 밀림으로
원주민들 노동력 착취
막대한 희생의 역사

김병민 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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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고무에 집착하는가.


수리할 게 투성이로 많은 낡은 집에 수도꼭지가 말썽입니다. 세탁기에 연결된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어 나오더군요. 예전에는 동네마다 흔했던 철물점도 요즘은 찾기 쉽지 않습니다. 인터넷에서 주문한 고무패킹이 오려면 며칠은 걸릴 테고, 쌓여 있는 빨랫감을 보니 심란해집니다. 작고 보잘것없는 고무링 하나가 일상을 흔들어 놓더군요.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일 고무가 없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어떤 사람은 고무가 무슨 대수겠느냐고도 하겠지만, 고무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맞을 겁니다.

인류의 물질과 함께한 역사에서 물질로부터 인류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물질을 얻는 과정에서 무지로 인한 억울한 희생도 많았으며, 물질이 주는 잉여에 취해 인류의 악한 품성을 드러낸 경우도 있었죠. 다만 축복이 더 크기에 인류의 어리석음과 과오는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인류는 여전히 수치스러운 익숙함을 가지고 물질을 이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무도 그런 대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20세기 초 두 번의 커다란 전쟁으로 유럽을 비롯한 여러 곳이 황폐화하고 세계는 공황에 빠집니다. 특히 1939년에 벌인 두 번째 전쟁에는 파괴 위에 참상을 얹습니다. 독일의 극에 달한 오만과 편견, 그리고 탐욕은 인종 절멸 수용소를 가동하며 유대인을 학살했죠. 그런데 제노사이드(genocide)라는 민족 청소로 알고 있는 지옥에도 고무가 존재했습니다. 당시 독일에는 합성고무 공장이 세 개나 있었지만, 두 번째 전쟁의 시작과 동시에 독일은 1941년 아우슈비츠에 동유럽 최대 규모로 네 번째 화학공장을 건설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수용소가 지어진 거죠. 그전에도 수용소는 있었지만, 노동이 목적이 아닌 살육과 멸절의 장소였죠. 이에 반해 아우슈비츠는 값싼 유대인 노예 노동력을 부리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노동조건은 열악했고 생산성이 떨어진 쇠약한 수용자들은 끊임없이 교체됐습니다. 소위 ‘단물을 모두 빼 먹힌’ 수감자들이 가는 장소가 가스실이었죠. 전쟁하는 동안 살육된 유대인 약 270만명 중 약 110만명이 아우슈비츠에서 산화했습니다. 섬멸의 이면에는 당시 유럽 최대의 화학공장 가동이란 목적이 있었고, 화학공장의 생산물은 합성고무였죠. 독일은 왜 이렇게 합성고무에 집착했었던 걸까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시계를 반세기 정도 앞으로 돌려야 합니다. 인류가 화석연료의 탄소결합을 산소로 끊어내고 막대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자연의 비밀을 풀어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산업혁명이죠. 철과 화석연료에 의존해 인류 문명을 수직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고무는 없어서는 안 될 물질이었습니다. 산업을 이끈 열기관을 중심으로 시작된 모든 기계적 운동에는 금속과 화석연료만 주인공일 것 같지만, 또 하나 없어서는 안 될 주연급 조연이 있었던 겁니다. 그 중요성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린 수도꼭지의 오링(O-ring)뿐만 아닙니다. 고무가 없다면 비행기는 물론 대부분 운송수단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금속으로 이뤄진 기계는 물론 대부분 산업 제품은 충격과 진동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져 버릴 겁니다. 당시 제국 열강들은 이런 고무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지요. 당시 고무를 얻는 방법은 고무나무에 상처를 내고 속살에서 송송 솟아 나온 우윳빛 점액질 수액인 라텍스(LATEX)를 모으는 방법이 유일했습니다. 이 천연고무 유액을 틀에 넣고 마치 떡을 쪄내듯 수분을 날려 물건을 만들어낸 겁니다.

고무나무 재배 여건 안 맞는
獨서 합성고무 개발
아우슈비츠에 공장 건설
노동력 공급 수용소 설치
쓸모 없어진 유대인들 살육
'지속가능'이라는 문구 속
'오징어게임' 다시 생각할 때

고무나무의 학명은 히비어 브라질리엔시스(hevea brasiliensis)입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마존 지역에서 자라고 있었던 식물이죠. 유럽과 미국은 자국 경제의 흥망이 걸린 원자재를 확보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소위 ‘아마존 쟁탈전’이었죠. 당시 남아메리카 일부를 식민지로 삼고 있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가 밀림으로 들어옵니다. 원래 대지의 주인인 브라질은 물론 미국도 이 쟁탈전에 합류했죠. 원주민이 유럽에서 건너온 질병으로 희생됐기도 했지만, 고무로 인한 노동력 착취는 그들에게 또 다른 재앙이었습니다. 또한 밀림 환경은 침략자들에게도 막대한 희생을 가져다줬죠. 원료 공급은 쉽지 않았고 결국 19세기 후반 영국은 브라질에서 고무나무 씨앗을 밀수해 영국 왕립식물원에 심게 됩니다. 여기서 성공적으로 자란 묘목들을 동남아시아의 영국 식민지들로 보냈습니다. 우리가 이 지역을 여행하며 고무나무의 고향을 동남아 국가로 알고 있었던 것은 여기서 가장 많은 고무가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무 쟁탈전에서 독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연기관을 최초로 발명한 독일은 자동차 산업에서 타이어와 패킹 제조에 필요했고, 전기를 이용하는 부분은 물론 의료와 화학 등 수많은 산업 분야에 고무가 사용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죠. 독일의 지리적 기후 조건은 고무나무 재배에 맞지 않았고,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독일은 식민지 확보에 합류하지 못했기에 열대 식민지를 활용할 수도 없던 상황이었죠. 결국, 독일 정부는 화학자들을 대거 동원해 자체적으로 고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겁니다.


사실 유럽의 고무 발견은 아마존 쟁탈전으로부터 약 4세기 전인 콜럼버스 대항해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419년 스페인이 식민지 마야 인디언들의 놀이에서 튀어 오르는 고무공을 본 것이 시작입니다. 당시 유럽에 ‘바운싱(bouncing)’이란 단어가 없었으니 돈을 벌 수 있는 고무에 열광한 건 당연했을 겁니다. 하지만 고무는 상상의 영역에 있던 소재였습니다. 온도에 따라 돌처럼 굳거나 액체로 녹아 쓸모가 없는 고무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죠. 그로부터 4세기 후 인류는 유황으로 고무를 경화시키는 방법을 알아냈고, 사람들을 다시 아마존으로 불러 모았던 겁니다. 사람과 동물의 노동력이 기계로 바뀌며 그 관절을 연결할 고무에 다시 목을 맨 거죠.


고무에 과학을 도입한 것은 독일입니다. 고무의 정체가 폴리아이소프렌이라는 고분자 물질이라는 것도, 미국이 세렌디피티로 발견한 고무의 경화 기제를 알아낸 것도 독일이죠. 결국 원료가 없는 독일은 고무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바이엘사에서 1909년 아이소프렌을 가공해 고무와 유사한 물질을 제조하는 데 성공했고, 그래서 부나 공장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부나는 부타디엔과 촉매인 나트륨을 합성한 축약어입니다. 부타디엔 분자를 길게 연결하면 폴리부타디엔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아우슈비츠의 화학공장에서 유대인들의 목숨과 교환한 합성고무입니다. 지금의 플라스틱 제조법은 이때의 고무 제조공정을 토대로 응용해서 개발한 겁니다. 어찌 보면 독일의 합성고무에 대한 연구가 이 세상을 완전히 바꿨다고 해야 합니다. 고무가 추동력이 되어 석유화학 공업과 함께 지구에 갇혀 있던 탄소를 꺼내 세상을 플라스틱으로 채웠죠.


합성고무의 등장에도 여전히 천연고무는 자연의 혈관에서 뽑아내고 있습니다. 합성고무는 거장인 자연의 능력을 따라잡을 수 없는 불완전한 대체재일 뿐입니다. 여전히 우리 문명은 천연고무만이 지닌 특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고무의 주 생산지가 동남아로 이동한 이유가 있습니다. 질병이 아마존의 고무나무를 초토화한 겁니다. 지금의 동남아에서 볼 수 있는 고무나무는 고 수확 품종에 접붙인 것들입니다. 일종의 아마존 고무나무의 클론인 셈이죠. 그러니까 질이 좋지 않은 것은 도태되는 생존 게임은 여기에도 적용됐고, 단일 종에 가까운 고무나무는 잎마름병 바이러스에 취약한 품종만 살아남은 겁니다. 교통의 발달은 대륙으로 떨어진 지금의 지리적 공간을 과거의 판게아로 봉합하는 실과 같습니다. 언젠가 잎마름병도 지리적 경계를 넘어 올 겁니다. 이런 일이 현실화하면 인류 문명에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재앙일 것이고, 회복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시간이 걸릴 겁니다.


우리는 최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며 너무 쉽게 ‘지속 가능한’이란 문구를 사용합니다. 대표적인 몇 가지 원인만 제거하면 지속 가능한 미래가 실현 가능할 것으로 이야기하죠. 하지만 ‘이기적 문명’에 자연의 풍경을 회복시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인류 생존 환경이 나빠지게 된 지점까지는 수많은 요소와 원인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물질은 촘촘하게 입체적으로 얽혀 있죠. 우리는 ‘지속 가능’이란 문구에 함의된 ‘성장과 생산성’에 포획되어 그 물질이 우리 눈앞에 올 때까지의 험난한 여정과 파괴와 희생을 무시하거나 잊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자연을 인류사회의 생존 방식인 ‘오징어 게임’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왜 성장만 하려 드는 걸까요. 잠시 쉬면 안 되는 걸까요. 이유도 모르고 또 다른 바벨탑을 세우는 일에 돌을 나르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병민 한림대학교 나노융합스쿨 겸임교수


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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