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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완벽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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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산둥성에서 출토된 기원전 3세기경 옥벽의 모습. 화씨벽도 비슷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미지출처=대만 국립고궁박물원 홈페이지]

중국 산둥성에서 출토된 기원전 3세기경 옥벽의 모습. 화씨벽도 비슷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미지출처=대만 국립고궁박물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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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흠이 없다는 뜻인 ‘완벽(完璧)’과 그 반대되는 뜻인 ‘하자(瑕疵)’는 정반대로 쓰이는 단어지만 어원은 동일하다. 모두 중국 춘추전국시대 최고의 외교가라 알려진 ‘인상여’라는 인물의 일대기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다.


기원전 3세기 중국 전국시대의 최강대국이던 진나라는 약소국인 조나라에 천하제일의 보석인 화씨벽을 넘겨주면 조나라와의 전쟁에서 빼앗은 15개 성을 돌려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당시 진나라 왕이던 소양왕은 자국의 군사력을 믿고 수차례 외국과의 조약을 파기한 바 있어 신용하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조나라 조정은 화씨벽을 진나라에 줘선 안된다는 강경파와 어차피 빼앗길 것이니 차라리 선물로 바치자는 화친파로 나뉘어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명운을 걸고 인상여는 사신이 되길 자청해 화씨벽을 들고 진나라로 들어간다.


인상여는 먼저 화씨벽을 소양왕에게 바쳤지만, 그가 약조한 15개 성을 돌려줄 마음이 전혀 없음을 알게 되자 계략을 쓴다. 소양왕에게 "화씨벽에도 남들이 잘 모르는 하자가 하나 있는데 그걸 알려드리겠다"며 화씨벽을 잠깐 보여달라고 청한다. 의심없이 소양왕이 화씨벽을 넘겨주자 인상여는 화씨벽을 손에 들고 약조대로 성을 돌려주지 않으면 화씨벽을 깨트려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이후 화씨벽을 비밀리에 조나라로 다시 돌려보낸 인상여는 소양왕에게 이미 화씨벽은 조나라로 돌아갔으며 자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밝혔고, 그를 죽여봤자 천하의 웃음거리만 되게 생긴 소양왕은 그를 살려줬을 뿐만 아니라 선물까지 함께 보냈다.

화씨벽과 얽힌 이 인상여의 일대기는 무사히 화씨벽을 조나라로 가져왔다하여 ‘완벽귀조(完璧歸趙)’라 불렸고, 완벽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 제 아무리 약소국이라 해도 치밀하고 담대한 전략을 펼치면 강대국과의 외교전에서도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역사적 사례로 남은 셈이다.


이 완벽의 일대기에 등장하는 또다른 용어로 ‘화천대유(火天大有)’가 있다. 목숨을 건 외교전을 떠나기 전, 인상여가 점을 봤는데 그때 나온 점괘가 화천대유였다고 한다. 주역 64괘 중에서도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는 길운을 상징한다는 이 말은 이후 완벽한 외교적 승리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에서 이 화천대유의 의미는 크게 바뀐 상태다. 우리의 화천대유는 정계와 얽힌 검은 돈과 부정부패의 상징처럼 쓰이고 있다. 인상여와 같은 담대하고 우수한 외교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한, 백척간두에 놓인 한반도 상황을 돌아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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