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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영화읽기]군 문화 달라졌다지만 춘래불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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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D.P.'로 다시 이슈된 軍 문화
군 당국의 거시적 노력만으론 한계
내부 구성원 '방관자'로 표현…묵과 없어야

[이종길의 영화읽기]군 문화 달라졌다지만 춘래불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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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D.P.’에서 103사단 헌병대 조석봉 일병(조현철)은 가혹 행위를 참지 못하고 탈영한다. 자기를 괴롭히고 전역한 황장수(신승호)를 찾아가 복수하려고 한다. 같은 내무반 DP병 안준호 이병(정해인)과 한호열 상병(구교환)은 박범구 중사(김성균)와 함께 그의 행적부터 조사한다. 조 일병의 지인들을 만나러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박 중사는 대뜸 두 사병에게 "개 키워봤냐?"라고 묻는다. "키우던 개가 사람을 물면 그 개는 죽여야 해. 한 번이라도 사람을 문 개는 용서가 안 되거든. 또 그런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개 입장에선 자기한테 돌 던지고 괴롭히던 새끼를 문 거면 많이 억울하지 않겠냐?" "조석봉 일병이 개라는 말씀입니까?" "(피식 웃으며)우린 아닌 줄 아냐?"


단순한 상명하복 문제가 아니다. 이를 공고히 하는 복종훈련, 즉 군기 잡는 군사문화의 폐해다. 내무반 생활은 전쟁에 대한 공포나 살인훈련에 대한 반감만큼 입영자들을 두렵게 한다. 한국군이 미 군정 시기에 기틀을 잡을 때부터 뿌리내린 악습이다. 군인은 전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철저한 위계질서를 체현해야 한다. 한국군은 반복적인 학대를 택했다. 형식적으로는 미국 군대와 흡사했으나 제도를 운용한 군부 엘리트들은 하나같이 일본 군대에서 훈련받고 복무한 장교들이었다. 일본 군대에서 병사들의 일상생활을 통제한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다. 일본 군대는 1930~40년대까지 장교의 병사 구타를 용인했다. 명령에 복종하는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문승숙이 쓴 ‘군사주의에 갇힌 근대’에서 한 일본군 병사는 구타 효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잔인하고 비합리적인 벌을 계속 받다 보니까 아무 생각 없이 명령에 따르는 것이 몸에 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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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압성은 사실 군대가 가진 일반적인 모습이다. 군사훈련의 사회화를 분석한 필립 카푸토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인간이 배출되는 배경을 연구했다. 그는 군 내부에서 신병에게 가하는 모욕의 기능에 주목했다. 정신·육체적 가학이 자존감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군중과 복종 심리를 채운다고 봤다. 조 일병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배역이다. 안 이병과 근무 교대하는 1화에서는 한없이 따뜻하다. "이병 안준호, 영창 근무 나왔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무슨. 안 힘들어?" "괜찮습니다. 저희 때문에 조석봉 일병님이 더 힘드시지 말입니다." "아픔 없는 교훈엔 의미가 없지. 인간은 희생 없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으니까. (…) 우린 나중에 애들한테 잘해주자."


조 일병은 가혹 행위에 시달리면서 점점 포악해진다. 그토록 증오하던 황장수처럼 폭력까지 행사한다. 후임들을 생활관으로 집합시켜 한바탕 얼차려를 돌린다. 신병들이 담장 밖에서 활동하는 안 이병을 몰라봤다는 이유다. "야, 이 XX 새끼들아. 너희들 후임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신병들이 선임 이름을 못 외워? 다 돌았냐? XX 새끼들아." 안 이병은 조 일병과 달리 군중 심리에 휘둘리지 않는다. 내무반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한다. 조 일병은 당황한다. "너 뭐 하냐?"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희도 많이 맞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런 것 좀 그만하고…" "네가 뭘 얼마나 맞았다고! D.P.라서 부대에 있지도 않았으면서, 씨." 정당화되지 못한 폭력은 권위와 위계 실추는 물론 피해의식까지 키운다. 조 일병에게는 비호하는 선임도 없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는 대물림에서 이탈해 탈영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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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단을 없애려는 군 당국의 거시적 노력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나 구성원들의 노력 없이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 그래서 한준희 감독은 마지막 6화 제목을 ‘방관자들’이라 명명했다. 탈영한 허치도 병장(최준영)의 할머니를 통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도 언급한다.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조 일병이 쓰러진 바닥에도 여전히 눈이 쌓인다. "휴대폰을 소지하는 등 군 생활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나 개개인이 묵과하는 이상 악습은 계속된다. 그렇게 생긴 반항심과 폭력성은 한국 사회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전역해도 마음에 남은 감정까지 지워지는 건 아니니까."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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