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On Stage] 한 송이 해바라기로 표현한 베르테르의 비극

최종수정 2020.09.17 15:31 기사입력 2020.09.17 15:31

댓글쓰기

원작 소설에 없는 해바라기 활용 '울림' 전해…비극적 삶 고흐 연상되기도

'롯데' 역 김예원(오른쪽)과 '알베르트' 역 박은석 [사진= CJ ENM 제공)

'롯데' 역 김예원(오른쪽)과 '알베르트' 역 박은석 [사진= CJ ENM 제공)


[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 뮤지컬 '베르테르'는 해바라기 한 송이가 쓰러지는 장면으로 끝난다. 주인공 베르테르의 죽음을 상징하는 은유다. 서정성이 짙게 묻어난다.


베르테르의 마지막 모습은 총구를 자기 오른쪽 관자놀이에 겨누는 장면이다. 이후 무대장치가 움직여 베르테르의 모습이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관객들이 이제 '탕' 하는 총소리가 들리겠거니 생각하는 순간, 무대 전면에 세워져 있던 해바라기가 쓰러진다. 총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원작 소설에 충실하다는 느낌을 준다.

'베르테르'의 원작은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가 스물다섯 살 때 14주 만에 썼다는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괴테는 소설에서 베르테르가 권총으로 자살하는 장면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베르테르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는 날 밤, 사랑하는 여인 롯데 등 지인들에게 마지막 작별 편지를 쓴다. 자정의 시계 종소리가 들린 뒤 롯데에게 "잘 있어요"라며 혼자 작별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은 "이웃 사람이 화약의 섬광을 봤고, 총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조용해졌기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공연 내내 예쁘게 만든 작품이라는 느낌을 준다. 원작 소설이 자살을 미화했다는 오해를 받아 '베르테르 효과'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것은 비극이다. 하지만 역으로 그만큼 소설이 죽음에까지 이르는 지독한 사랑을 절절하게 표현했다는,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줬다는 뜻이기도 하다.

뮤지컬 '베르테르'도 울림이 작지 않다. 원작 소설의 예쁘지만 지독한 사랑을 무대 위에서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롯데' 역 이지혜  [사진= CJ ENM 제공]

'롯데' 역 이지혜 [사진= CJ ENM 제공]


1부에서는 사랑의 세레나데가 쉼없이 이어진다. 롯데는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며 "하룻밤이 천년"이라고 노래 부른다. 오글거리는 가사에도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베르테르가 "그댄 어쩌면 그렇게 해맑을 수 있는지"라고 노래할 정도로 롯데의 한없이 쾌활하고 밝은 성격 때문이다. 롯데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캔디 같다. 롯데는 거리에서 인형극을 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호의를 베푸는 순수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밝고 어린애 같은 천진난만함은 베르테르와의 첫 만남에서 잘 드러난다. 원작 소설에서보다 더 밝고 쾌활한 롯데의 성격은 극의 생기를 불어넣는데 효과적인 전략으로 보인다.


뮤지컬 '베르테르'는 영리하게도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를 연상케 하는 장치를 동원해 관객의 감정을 건드린다. '베르테르'에서 중요한 소재로 활용되는 해바라기는 고흐가 자주 그린 꽃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해바라기가 나오지 않는다. 정작 원작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식물은 보리수다. 원작에서 베르테르는 마지막 편지에 보리수 아래 묻히고 싶다고 쓴다.


뮤지컬 '베르테르'에서는 무대 왼쪽 기둥을 가지만 남은 쓸쓸한 나무 한 그루로 형상화했다. 하지만 무대 오른편과 오케스트라 피트를 장식한 해바라기가 더 눈에 띈다. 해바라기는 베르테르와 고흐의 삶을 겹치게 한다.


고흐는 그림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으로 타오른 삶을 살았다. 그는 잠도 안 자고 그림만 그렸나 싶을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베르테르 역시 롯데를 향한 맹목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롯데는 알베르트와 결혼했고 이 때문에 현실에서 베르테르의 사랑은 인정받을 수 없었다. 고흐와 베르테르의 비극적 삶은 결국 젊은 나이의 권총 자살로 끝을 맺는다. 해바라기의 꽃말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뜻하는 '애모'다. 편지도 베르테르와 고흐를 간접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고흐는 생전에 친동생 테오에게 수없이 많은 편지를 썼으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보낸 수많은 편지를 엮은 서간체 형식의 소설이다.


'베르테르'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한국적 감성에 맞게 각색한 창작 뮤지컬이다. 2000년 초연해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오는 11월1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공연한다. 베르테르 역으로 엄기준·카이·유연석·규현·나현우, 롯데 역으로 김예원·이지혜, 알베르트 역으로 이상현·박은석이 출연한다.

'베르테르' 역 규현(오른쪽)과 '롯데' 역 김예원 [사진= CJ ENM 제공]

'베르테르' 역 규현(오른쪽)과 '롯데' 역 김예원 [사진= CJ ENM 제공]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