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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시장은 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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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비비] 시장은 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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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중세에 이자는 뜨거운 감자였다. 성경에서 예수가 고리대금을 저주한 이후 기독교는 이자가 붙은 모든 자금거래를 금지했다. 물론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운영하는 고리대금업은 허용되었으나 멸시의 대상이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은 유대인이었다.


교회와 그를 따르는 세속 권력의 엄격한 통제 때문에 자금의 대차거래는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자금공급의 부족에 따른 높은 이자와 고리대금업의 범주가 아니라고 판단되는 투자수단의 발달이었다. 그와 같은 투자수단 가운데 하나가 무역에 대한 공동투자(joint venture)였다. 중세 후기 동양과의 향신료, 신대륙과의 귀금속 무역 등에 대한 공동투자는 위험은 컸지만 성공하면 수익이 높았다. 이자수익이 아니기 때문에 허용되었다.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가 했던 무역투자도 아마 그런 유형이었을 것이다.

자금을 빌려주는 경우 이자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금에 대한 권리(차용증)를 만기 전에 매각할 수도 없었다. 만기 전에 매각하려면 미래에 회수할 원금을 할인해야 한다. 그런데 그때 적용되는 것이 이자율이다. 이때 할인율(이자율)을 낮게 적용하면 차용증 매각을 통해 이자를 챙기는 것이 된다. 차용증을 만기 이전에 타인에게 매각하는 것은 이렇듯 이자를 편법으로 수취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되었다. 비교적 안전 자산인 채권은 매우 오랫동안 기독교 세계에서 철저하게 배척되었다.


이자가 붙은 자금거래가 처음 허용된 것은 영국에서 그 유명한 헨리 8세 때이다. 헨리 8세는 가톨릭교회를 배교하고 국왕을 수장으로 하는 영국교회 곧 성공회를 세운 인물이다. 그의 치세인 1545년, 셰익스피어가 태어나기 19년 전, 영국 의회는 이자지급을 10%까지 허용하고 그 이상은 고리대금업으로 정의하는 고리대금법을 제정했다. 영국의 이자율 상한은 1624년 8%, 1651년 6%, 1713년 5%까지 계속 하락했다. 그리고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 중이던 1854년에 이르러서야 일종의 이자제한법으로 남아 있던 고리대금법이 완전히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가톨릭 국가에서 고리대금에 대한 완전하고도 엄격한 규제는 1789년 일어난 프랑스혁명 때까지 지속됐다.


서양 중세시대 채권거래를 금지한 이 같은 사정은 지금의 우리에게 낯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눈을 들어 잠시 돌아보면 정도의 문제지만 그런 규제와 장벽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교실에서 거시경제학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설명하는 것이 국민경제의 순환이다. 가계는 노동과 자금을 시장에 공급한다. 기업은 노동을 고용해 생산 활동을 하고 차입한 자금으로는 투자한다. 그 대가로 기업은 임금과 자본소득을 가계에 지급한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계는 소득의 일부를 소비하고 나머지를 금융시장에 저축으로 자금을 공급한다.

이와 같은 순환은 항구적으로 이루어진다. 경제를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순환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환의 어느 길목을 막으면 큰 순환 곧 경제 전체가 일그러질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가 등장하면서 추구한 소득주도성장을 포함한 일련의 정책은 국민경제가 순환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가운데 추구되고 있기 때문에 실패의 길로 가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은 겨냥하는 시장이나 집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순환을 통해 전체 경제에 영향을 미친다. 순환의 원리를 바탕으로 이와 같은 사정을 깊이 따져봄이 없이 급조된 정책은 단언컨대 실패한다. 최근에는 심지어 부동산거래 허가제까지 거론하는 것을 보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은 중세가 아니지 않은가?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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