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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노스' 사기극의 주인공, 홈즈는 왜 금발로 염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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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노스의 진단키트인 에디슨 광고에 직접 나온 엘리자베스
 홈즈의 모습(사진=테라노스 홈페이지)

테라노스의 진단키트인 에디슨 광고에 직접 나온 엘리자베스 홈즈의 모습(사진=테라노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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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금발벽안'의 아름다운 미녀이자 명문대 출신의 과학자가 바이오 업계를 뒤흔들 신상품을 들고 나왔을 때, 전 세계는 의심없이 환호했다. 실리콘밸리 최고의 신데렐라, 90억달러의 기업가치와 45억달러의 자산을 가졌던 테라노스의 주인, 엘리자베스 홈즈(Elizabeth Anne Holmes)는 정말 화려하게 업계에 데뷔했었다.
그녀는 처음부터 매스미디어가 좋아할만한 모든 조건을 갖춘, 희소성이 매우 높은 '상품'이었다. 1984년 워싱턴 DC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난 완벽한 백인 미녀, 스탠포드 대학 화학과를 나온 인재, 화려한 언변과 뛰어난 언어능력 등 미국사회 내에서도 좀처럼 찾기 힘든 여러 좋은 이미지들을 갖고 태어난 캐릭터였다.

또한 그녀는 그런 자신의 자산인 '이미지'를 확실히 이용할 줄 아는 기민한 사업가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오래 살았던 덕에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었던 홈즈는 스탠퍼드대 화학과에 재학 중, 싱가포르의 한 게놈 연구소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이후 학교를 나와 '리얼타임 큐어'라는 바이오 스타트업을 시작, 2004년 회사 이름을 테라노스로 바꿨으며, 2012년 문제의 만능키트인 '에디슨'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CEO가 됐다.

단지 몇 방울의 피만으로는 질병검진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매우 기초적인 의학계 상식이었지만, 테라노스 열풍이 가속화되면서 이러한 상식보다는 홈즈의 이미지에 투자자들이
 더욱 열광하게 됐다.(사진=아시아경제DB)

단지 몇 방울의 피만으로는 질병검진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매우 기초적인 의학계 상식이었지만, 테라노스 열풍이 가속화되면서 이러한 상식보다는 홈즈의 이미지에 투자자들이 더욱 열광하게 됐다.(사진=아시아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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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은 그녀의 설명만 들으면 정말 혁신적인 진단키트였다. 보통 어느 나라에서나 수백만원 이상이 들어가는 종합검진을, 단돈 50달러에, 피 몇방울만 채취해서 200여개의 질병을 진단받을 수 있다는 그녀의 발표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사실 몇 방울의 피는 채취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으로 정확한 질병 진단이 불가능하고, 혈액 샘플로 진단을 하려면 상당량의 피를 뽑아야한다는 것이 의학계의 기초상식이었지만, 그런 사실은 중요치 않았다.

사실 테라노스의 실질적인 상품은 에디슨이 아니라 홈즈, 그녀 자신이었다. 수많은 사모펀드와 미국의 저명한 투자자들, 정치계, 언론에서 주목한 것은 피 몇방울로는 아무것도 진단할 수 없다는 상식보다 금발벽안의 명문대출신이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스타트업을 시작했다는 백인 미녀 과학자가 가진 스토리텔링이었다. 이런 이미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그녀는 갈색이던 머리를 금발로 염색했고, 모든 테라노스의 광고에는 자신이 출연해 테라노스의 이미지를 자신의 이미지와 결부시켰다.

이 '금발벽안'이 가지는 힘은 아직도 서구권에서 엄청나다. 금발을 가졌거나 파란 눈을 가진 사람은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금발벽안을 모두 가진 인물은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극소수다. 그래서 고대 유럽 전역에 퍼져 살던 켈트족 신화에서도 신의 선택을 받거나 마법을 부리는 존귀한 사람들의 이미지로 고착화됐고, 중세 이후에도 여성들이 금발을 갖기 위해 갖가지 염색법, 탈색법 등이 전해내려오곤 했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백인우월주의 열풍이 심해지면서부터는 숭배의 대상이 됐다.

나치 독일 당시 국민들의 인종을 분류하는 이른바 '인종위생사'가 한 여성의 외모적 특징을 측정하는 모습.(사진=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홈페이지)

나치 독일 당시 국민들의 인종을 분류하는 이른바 '인종위생사'가 한 여성의 외모적 특징을 측정하는 모습.(사진=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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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나치 독일에서는 아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전 독일 국민이 금발벽안이 되기 위해 갖가지 실험까지 했다. 머리를 금색으로 염색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동공에 주사기로 염료를 주입해 눈 색깔을 파란색으로 만드는 실험까지 자행했다. 그 당시에는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금발벽안에 대한 욕망은 하나같았다. 미국에서도 흑인은 물론, 유럽 내의 유색인종 계열인 라틴족 계열 남유럽 지역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피아나 범죄를 일으키는 인종이라며 거세를 강요하거나 이민을 거부하는 법이 수많은 주에 존재했다.

그런 '완벽한 백인' 과학자가 혈액 샘플을 들고 바이오의 새 미래를 여는 것처럼 광고를 하면서, 엄청난 지원이 시작됐다. 조지 슐츠 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 전 미국국무장관, 샘 넌 전 미국 상원의원 등 많은 정치인들과 투자자들이 그녀를 극찬했다.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도 그녀의 연구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2014년 미국 경제지 포춘이 홈즈와 테라노스를 잡지 커버로 내세우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테라노스의 기업가치는 한때 90억달러에 육박했고, 테라노스 지분의 50%를 가진 홈즈는 45억달러를 가진 갑부로 묘사됐다.

이 10조원짜리 초대형 사기극이 끝난 것은 시장이 이성을 차린 뒤였다. 2015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사기의혹으로 테라노스는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 주식거래가 동결됐고 투자자들의 고소가 이어졌다. 2016년 테라노스의 임상실험연구소가 폐쇄됐고 홈즈는 증권사기혐의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로부터 기소됐다. 테라노스는 이달 14일부터 완전히 업계에서 퇴출되고 말았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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