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쓴 '향연'은 심포지엄의 형식과 정신을 아울러 보여준다. 플라톤은 이 책에서 달콤하기 이를 데 없는 필치로 '에로스(Eros)', 곧 사랑에 대하여 말한다. "'사랑'은 '아름다움'에 대해 육체미를 초월한 정신미(精神美)로 향하는 심정이지만, 이윽고 이론미(理論美:眞)로 향하고, 마침내 행동미(行動美:善)를 지향한다."(두산백과)
얼마 전 인터넷에서 재미난 글을 읽었다. 제목은 '부부의 잠자는 모습이 알려준 사랑의 온도'이다. 아홉 가지 잠자는 모습이 그림으로 나온다. '외면형', '게 자세', '지붕 자세', '대화형', '할리우드형', '매듭형', '스푼 자세', '역 스푼 자세', '의지형'…. 이중 외면형과 의지형은 부부가 등을 진 자세다. 금세 구분하기 어렵다. 잘 보니 의지형은 등을 맞대고 있는데, 글쓴이는 이 자세를 매우 바람직하게 본다.
"등을 완전히 밀착한 상태로 수면에 빠진 부부만큼 이상적인 관계도 없다. 서로를 기댄 수면자세처럼 관계에서도 서로 많이 의지하고 있는 부부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모든 면에서 적당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투고, 서운해 하고, 가끔은 상대의 잘못으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지만 많은 일들을 함께 겪었기에 서로에 대해 잘 알고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는 관계다."
'반쪽 사랑이 어느 날 자기 반쪽을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나야 나!" 반쪽은 대꾸도 없고, 문은 열리지 않는다. 다음날 또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나야 나, 나라니까!" 이번에도 대답 없다. 반쪽 사랑은 고민한다. 며칠 뒤 다시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너야 너. 네가 왔어!" 마침내 문이 스르르 열린다.' … 동화작가 정채봉이 '생각하는 동화-향기자국'에 담은 이야기다.
외워 두자. 사랑은 '나'가 아니라 '너'다.
허진석 문화스포츠 부국장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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