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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통령에게 대놓고 욕질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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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련없음 [사진제공=Thomas Tolkien/Flickr/사이언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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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병신년 콤플렉스를 아는가. 연말마다 그 다음에 펼쳐질 한 해를 상서롭게 여기며 그 새로운 시간을 예찬하고 싶은 마음이 된다. 올해도 그 마음이야 다를 리 없지만, 해를 가리키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가 살짝 얄궂게 붙었다.

천간은 '하늘의 줄기'를 나눈 것으로, 甲(갑) 乙(을) 丙(병) 丁(정) 戊(무) 己(기) 庚(경) 辛(신) 壬(임) 癸(계) 등 10개로 나뉘어져 있고, 지지는 '땅의 가지'를 말하는 것으로 子(자) 丑(축) 寅(인) 卯(묘) 辰(진) 巳(사) 午(오) 未(미) 申(신) 酉(유) 戌(술) 亥(해) 등 12개로 되어있다. 이것이 서로 '경우의 수'로 조합하면서 60개의 간지(干支)가 만들어진다. 하늘과 땅이 서로 얽혀 짜이는 것이니, 우리가 맞이하고 보내는 시간들이 오묘한 우주의 행렬에 속해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동양적 사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 을미년과 내후년 정유년 사이에 끼어있는 해의 이름이 하필 '병신년'이다. 민망한 뉘앙스를 피하려고 '병신해'라고 붙여봐도 핵심적인 찜찜함은 피하기 어렵다. 포털을 비롯한 웹사이트 글쓰기 창엔 '병신'이나 '병신년'을 아예 쓰기 금지해 놓은 곳도 있을 정도이다. 이 말은 장애자를 조롱하는 말에다 여성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겹쳐서, 아무리 감정을 걷어내고 발음하려 해도 본능적으로 혀가 머쓱해진다. 이걸 어쩌면 좋으랴? 그렇다고 내년을 빼먹고 그다음해로 넘어갈 수도 없다. 여러 모로 불확실성도 많고 리스크도 예상되며 한 해를 잘 경영해나가기가 만만찮아 보이는 내년인지라, 아예 호칭부터 우리를 이렇게 난감해하는 상황이 무척 '병신년'스럽다.

역사적으로 보면 병신년은 미국이 치열한 투쟁 끝에 독립을 성취한 해(1776)이고 그해는 또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발표하여 자본주의의 한 기틀을 세운 해이다. 고려가 후삼국 통일을 이룬 것(936)도 병신년이었고, 세계를 놀라게 한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지는 것(1236)도 그 해이다. 조선 르네상스를 꽃피운 정조가 즉위한 것(1776)도 병신의 일이며 고종이 일본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전략으로 러시아공사관으로 몰래 '정치 무대'를 옮긴 아관파천(1896)도 그 해에 일어났다. 그러니 역사 속의 병신년은 중요한 성취들이 이뤄지고 획을 그은 인물들이 등장하던 해이기도 했다. 허투루 볼 해가 아니란 얘기다.

오늘자 모 인터넷언론 홈페이지 검색란에 오른 톱기사는 "<박근혜 병신년 지지율> 우린 이러지 말자"이다. 기사 내용을 읽어보면 장애인이나 특정인에 대한 폄하가 될 수 있는 표현으로, 내년 간지를 이용해'먹는' 일을 자제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참으로 가상한 취지인데, 실상은 그 제목부터 이미 이 나라의 리더에 대한 교묘한 조롱의 뉘앙스를 담아, 앞으로는 두들기는 척 하며 뒤로는 슬쩍 그것을 즐기는 언론의 행태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내년의 간지를 핑계로 공공연한 욕설을 내밀며 뒤에서 킥킥거리는 후련함을 즐기려는 태도가 선연히 읽힌다.
하지만 이런 간지명칭 문제는 연초는 물론 한해 내내 말썽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취지에 악의가 없다 하더라도 외견상 드러난 것이 치명적인 욕설일 수 있기에, 혹여 모욕감이 들어도 대놓고 화내기도 쑥스럽다. 이런 점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을 것이다. 아예 이런 간지 명칭을 안 쓰려는 경향도 생길 수 있다. 얄팍한 말장난들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병신년은 상서로운 '붉은 원숭이'의 해라고 한다. 지혜를 상징하는 원숭이가 줄을 타고 숲을 비상하는 모양새는, 네트워크를 타고 글로벌 공간에서 디지털 한류를 주도해나갈 대한민국의 비전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듯 하다. 그 멋진 이미지를 놔두고, 허튼 욕설이나 조롱으로 다가올 한 해를 미리 '뒷담화'나 하며 맞을 건가.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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