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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블로그]'승자의 저주'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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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에서 손을 떼라." 2010년 12월 미국 경제전문지인 월스트리저널(WSJ)의 기사에 현대차그룹이 발칵 뒤집혔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에 내줬던 현대건설을 품에 안기 직전이었다.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가 자금흐름에 문제가 발견되면서 지위가 박탈됐고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과 매각협상을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상황이었다.

그런데 미국의 유력지가 딴지를 걸며 "현대차그룹이 시너지가 거의 없는 건설사를 인수하려는 것은 불명확한 전략이다. 옛 현대그룹 제국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WSJ의 '반대'에도 현대건설은 현대엔지니어링과 함께 이듬해 4월 현대차그룹에 인수됐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수주액 27조1670억원, 매출액 17조3870억원을 기록했다. 2010년과 비교해 수주액은 48%, 매출액은 74% 증가했다. 영업익은 1조원에 육박(9589억원)해 건설업계 첫 1조 클럽 시대를 열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1년부터 올 1분까지 수주액이 261억달러다. 인수 이전인 2010년까지 36년간 누적수주액(80억달러) 대비 3.2배 규모다. WSJ가 우려한 '승자의 저주'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WSJ는 작년 10월에도 현대차그룹의 한전부지 매입에 대해 "전형적인 한국재벌의 문제점이 재확인된 것"이라고 했다. SK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도 "시너지가 없다" "대규모 투자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이들과 달리 승자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한 기업도 많다. 대부분 건설산업에 진출(인수합병 포함)하거나 사옥을 지은 뒤에 위기를 겪었다. 웅진그룹은 윤석금 회장이 무(無)사옥 원칙은 지켰지만 극동건설과 다른 기업의 인수 후유증을 겪다가 결국 와해됐다. 강덕수 회장이 일군 STX그룹도 한창 잘 나갈 때인 2007년 신사옥을 준공했지만 이듬해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그룹이 해체됐다.

동국제강도 2010년 8월 옛 사옥터에 페럼타워를 세운지 5년도 안돼 철강업황 부진,오너리스크, 재무구조 악화 등의 이유를 들어 결국 삼성생명에 팔기로 했다. 승자의 저주의 대명사가 됐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했다가 그룹이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가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인수를 통해 그룹 재건에 나서고 있다.

승자의 저주는 결과론이다. 승자의 저주와 '승자의 축복'은 종잇장 차이다. 오너의 과도한 탐욕은 오너의 과감한 결단이 되고 문어발 확장은 사업다각화로, 신사업 진출은 미래신수종 사업으로, 사옥 건립은 계열사의 시너지 효과로 바뀐다.

애초부터 승자의 저주가 무서웠다면 삼성의 반도체, 현대의 자동차와 중공업, 포스코의 제철소는 없었을 것이다. 승자의 축복에 대한 막연한 환상도 금물이지만 승자의 저주가 관용어구처럼 남발되는 것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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