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쉰을 훌쩍 넘긴 중년의 사내가 아침마다 집을 나설 때 동네 어귀에서, 혹은 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거리에 불쑥 차를 세우고 내려서 핸드폰을 꺼내고는 마치 숙제를 하는 아이처럼 산수유 꽃망울의 솜털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는 모습을 떠올려 본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몇 개의 중견기업을 경영하느라 하루하루 일정이 꽉 짜여 있을 그로 하여금, 특히 요즘엔 회사 하나를 상장시키느라 여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바쁘다는 그를, 무엇이 그런 그의 급한 걸음을 멈추게 하고 차에서 내리게 해서는 산수유 가지 위로 몸을 기울이게 하는가. 그 마음을 다만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라고만, 꽃이 피는 소리와 봄이 오는 소리를 눈으로 들으려는 마음이라고만 간단히 얘기할 수는 없다.
그 마음은 또한 모진 겨울바람을 이겨낸 여리지만 강인한 생명력에 경의를 보내는 마음이며, 자기 자신도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인 것이며, 꽃이 그렇듯 자신도 나날이 새롭게 갱신(更新)하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그 마음은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모든 이들, 60대건 50대건, 20대건, 남성이건 여성이건, 높은 사람이건 낮은 사람이건, 그 모두를 한 친족으로, 한 영토의 동족으로 만들어주는 마음이다.
이명재 논설위원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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