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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이슈]절반된 기름값, 그 뒤의 '오일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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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김근철 특파원]지난해부터 글로벌 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유가전쟁이 좀처럼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6월을 전후해 정점을 찍었고 최근까지 50%나 떨어진 상태다. 미국 시티그룹의 에드워드 모스 애널리스트는 지난 10일 "공급 과잉으로 인해 미국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이 일시적으로 배럴당 20달러까지도 하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유가 하락의 원인은 간단하다. 글로벌 경제 성장세 둔화와 함께 소비는 주춤거리는데 산유량은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2월 에너지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전 세계 하루 평균 소비 규모를 9314만배럴로 전망했다. 공급 규모는 하루 9376만배럴로 제시했다. 단순 계산을 해도 매일 60만배럴 이상이 남아돈다.
예전 같았으면 산유국 카르텔인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벌써 나서서 생산량을 조정하며 인위적인 유가 상승을 유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국제정치와 경제 논리가 뒤엉키면서 글로벌 공급 조정 시스템은 작동을 멈춘 상태다.

가장 극명한 사례가 지난 11월 OPEC 석유장관 회의다. 과잉공급으로 인한 유가 급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마련된 자리였지만 "기존 생산량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OPEC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한 결과다. 사우디는 당분간 손해를 보더라도 새로운 경쟁자로 떠오르고 있는 북미지역의 셰일업계 생산기반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사우디의 배럴당 생산단가는 11~17달러로 추정되지만 셰일업계의 생산단가는 5배 이상이니 '치킨게임'에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지난 20일 미국의 유전개발업체 베이커휴즈는 미국 유정채굴장비 수가 11주 연속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사우디의 계산이 일정 부분 맞아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미국 셰일업계도 결국 원가 절감과 신기술 확보로 이에 맞설 것이란 전망도 만만치 않다. 유정채굴 장비 감소 추세도 급격히 둔화되고 있다. 사우디의 계산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가능성도 많다는 얘기다.
미국은 오히려 저유가의 최대 수혜국 중 하나다. 월스트리트에선 미국의 '저유가 음모론'도 파다하다. 미국 정부가 저유가를 방치하면서 반미(反美) 산유국들을 손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교롭게 유가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러시아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전격 편입하고 우크라이나 내전에까지 개입하자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다짐해왔다. 지난해 말 러시아 재무장관은 유가하락과 금융제재로 1400억달러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루블화는 달러 대비 45.9%의 약세를 보였다. 결국 지난달 26일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러시아 국가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인 BB+로 강등했다.

베네수엘라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 시절부터 석유 수출을 통해 얻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중남미지역 내 반미 좌파연합의 맹주를 자처해왔다. 그러나 유가가 급락하면서 재정 위기와 함께 연간 60%대의 인플레이션율에 시달리며 국가 부도 사태를 코앞에 두고 있다. 미국의 경제제재로 원유 수출 의존도가 높아진 이란도 치명상을 입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소비대국은 저유가가 오히려 반갑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지난 24일 미 상원 증언에서 "저유가가 소비를 늘려 미국 경제 전반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 인해 원유 중개인들과 투자은행들은 저유가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투자자문사 S&P캐피털 IQ은 최근 "당분간 유가를 끌어올릴 촉매 요인이 없다"면서 "유가가 50달러 아래에서 머무르는 상황에 익숙해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김근철 특파원 kckim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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