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맹녕의 골프영어산책] "미국 대통령은 골프광②"

조지 W. 부시 전 미국대통령 미국골프협회(USGA) 회장을 배출할 정도로 명망 높은 골프가문이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왼쪽)이 2012년 라이더컵 당시 프레드 커플스 미국팀 단장을 찾아 격려하는 장면.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대통령은 골프계에서는 산업화에 기여한 업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바이런 넬슨이 "아이크(IKE)가 없었더라면 미국 골프가 지금처럼 인기 스포츠로 발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8년 임기 중 무려 800회의 라운드로 "대통령과 골퍼를 겸직했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일상에서도 골프화를 많이 신고 다녀 원래 애칭인 '아이크' 대신 '스파이크(Spike)'로 불리기도 했다. 'Don't ask what I shot(내 스코어를 묻지 마라)'이라는 골프 자서전도 출판했다.

대통령직에서 막 물러난 직후 한 골프장 직원이 골프 근황에 대해 묻자 "퇴임 후 내 골프가 달라진 건 내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이기고 있다는 것이다(How has retirement affected my golf game? A lot more people beat me now)"라고 응수한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시니어들이 "그린에 올라가면 투 퍼팅 오케이"라는 흔히 말하는 것도 '아이젠하워(아이크) 골프(Let's play IKE golf)'로 요약한다. 공을 홀에서 꺼내다가 고혈압으로 쓰러질까봐 만든 말이다.

조지 W. 부시 43대 대통령과 그의 아버지 조지 H. 부시 41대 대통령은 '스피드 골퍼(speed golfer)'로 유명하다. 아버지는 1시간 42분 만에 18홀을 주파한 기록이 있다. 아들 역시 스피드 플레이어지만 기량은 아버지에 못 미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외조부인 조지 허버트 워커는 미국골프협회(USGA) 회장을 지냈고, 할아버지 프레스코트 부시는 USGA 사무총장을 역임한 골프명가다.

부시 대통령은 퇴임 후 "대통령일 때는 골프라운드를 하면 언제나 아너(honor)였는데 이제는 동반자에게 그 명예를 자주 뺏긴다"고 했다. 대통령에게는 스코어에 관계없이 '프레지던트 아너(President honor)'를 주는 것이 관례라는 이야기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수는 존 F. 캐네디가 꼽힌다. 핸디캡 9, 250야드를 넘는 장타에 우아한 스윙과 신사 매너를 가졌다. 골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했던 당시에는 비밀 골프를 즐겼고, 스코어도 숨겼다.

라운드 수로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을 따를 사람이 없다. 8년 동안 1200라운드를 소화했다. 한겨울에는 눈 속에서도 공이 잘 보이도록 붉은 페인트를 손수 칠하는 열정을 보였다. 심지어 재혼하기 위해 둘째 부인을 처음 만나는 날도 라운드를 했다는 후문이다. 이 부인이 나중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골퍼가 됐다는 대목도 아이러니다. 위렌 하딩은 1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골프를 쳤고, 결국 클럽하우스에서 종전 사인을 했다.

골프가 백악관에 입성한 건 1909년부터 임기를 맡은 윌리엄 태프트 27대 대통령부터다. 100년이 넘었다. "백악관에 골프 유령이 숨어 있어 대통령은 바뀌어도 골프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미국 대통령 중 골프를 치지 않으면서 대통령이 된 사람은 허버트 후버, 해리 트루먼, 지미 카터 등 딱 3명이다. 이들 3명은 공교롭게도 모두 재선에 실패했다.

글=김맹녕 골프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