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이 할머니(92)는 열여섯 살 때 바닷가에서 조개를 잡다가 영문도 모른 채 일본 나고야로 끌려갔다. 10여명의 조선 처녀들과 감금돼 있다가 중국 만주로 이동, 6년 동안 만주와 상하이의 위안소를 떠돌았다. 같이 끌려간 고종사촌은 해방을 맞은 해에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일본군 총에 맞아 사망했다. 1948년에 귀국해 3년 만에 고향인 남해로 돌아와 1남2녀를 입양해 키웠다.
#20. 박○○ '손녀가 피해자 등록신고…우울증 앓아'
박○○ 할머니(89)에 대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증언집은 따로 나와 있지 않다. 박 할머니의 경우 근래에 손녀의 신고로 위안부 피해자 등록을 마쳤지만 공개되는 것을 꺼려 해 할머니의 정확한 동원 시기와 장소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21. 박옥선 '17살 中으로 강제동원돼 어렵게 국적 회복'
1924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박옥선 할머니는 17세 때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무링(穆陵) 인근으로 강제 동원됐다. 당시 일본 이름은 아키코. 4년 동안 위안소 생활을 하다가 해방 후 중국에 정착했다. 사망신고가 돼 있던 터라 어렵게 국적을 회복하고 2003년 4월 주민등록증을 취득했다. 2002년 8월 나눔의 집에 입소한 할머니는 향수병을 달래기 위해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아흔의 나이에도 방문객이 오면 대화가 가능할 만큼 정정한 편이다. 앓고있는 지병도 없다. 할머니 소원은 중국에 남아있는 손주들을 한국에 데려오는 것. 손자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손자 또래가 나눔의 집에 방문하면 손을 덥석 잡으며 꽤 반가워하신다. 헤어질 때는 연신 "또 놀러오라"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할머니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은 시리즈 중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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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선 기자 matthew@asiae.co.kr
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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