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자칫하면 역풍으로 수권야당 정체성 잃을 수 있어
[아시아경제 전슬기 기자] 정치는 생물이다. 야당의 의혹으로 시작된 '2012년 대선 불법 댓글 사건'이 '대선 불복'이란 불씨로 정치권을 정조준하고 있다.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품은 건 민주당이다. 긴 장외투쟁으로도 좀처럼 주도권을 쥐지 못했던 민주당에 이번 기회는 판세를 뒤집을 최대 찬스다. 하지만 자칫하면 제우스의 '화(火)'는 수권야당의 정체성을 한번에 삼켜버릴 수 있다. 민주당은 이 불을 대선 불복으로 국민에게 줄 것인가, 말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변수가 생겼다 바로 문재인 의원의 발언이다. 문 의원은 23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지난 대선 당시의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및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선 불복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대선패배의 당사자 발언이라는 점에서 정권의 정통성에 정면 도전한 모습이 됐다. 민주당 지도부는 문 의원의 성명서 발표를 만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 의원의 발표는 벌써부터 여당에게 공격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여당은 민주당이 문 의원을 통해 대선 불복을 선언한 것이라며 대대적 반격에 나섰다. 민주당은 문 의원의 발언으로 어느새 대선 불복 불씨를 붙인 모양새가 된 것이다.
민주당은 갈림길에 섰다. 하나는 문 의원의 발언을 토대로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국방부 사이버사령부 댓글 의혹 사건 등에 대한 추가 문제 제기를 하며 총공세를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 대선 불복 프레임을 어떻게 깨고 역풍을 피할 것인가에 대해 배수진을 쳐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일단 대선 불복 여론을 잠재우고 대선 불법에 초점을 맞춰 장기적인 전략으로 가는 것이다. 이 경우 수사 상황을 보며 당 차원의 움직임을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의 반응이 없는 상황에서 2012년 대선 불씨가 시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정국을 몰고 온 민주당의 딜레마다.
전슬기 기자 sgju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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