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신라와 당나라의 '나당전쟁' 격전지로 전해지는 '매소성전투'의 현장이 바로 경기도 연천 '대전리 산성'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들이 학계를 통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 발굴조사 결과 대전리 산성의 축성기법과 인근 출토 유물 등을 통해 대전리 산성이 매소성이었을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과 연천군은 나당전쟁기의 매소성으로 유력하게 지목돼온 대전리 산성에 대한 1차 발굴조사를 마무리했다.
이번 조사 결과 대전리 산성의 성벽 몸체는 외성벽에 보축성벽을 덧붙여 쌓은 협축식 기법으로 축조된 것이 확인됐다. 외성벽은 주로 장방형으로 치석된 편마암계 성돌을 이용해 품자형(品字形)으로 정연하게 쌓았는데, 기저부(밑단)에서 상단까지의 높이는 최대 13m나 되는 곳도 있었다. 학계는 이러한 협축식 기법 및 품자형 축성시기를 두고 삼국시대 후기로 추정하고 있으며, 축조 주체를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 신라로 판단하고 있다. 성벽 주변에서 출토된 유물에는 나당전쟁 이전인 7세기 전반의 기와, 굽다리 접시, 바리(그릇) 등이 나왔다.
이 관계자는 "이번 성과는 대전리산성이 나당전쟁기에 이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전리산성이 매소성으로 비정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일단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라고 말했다.
매소성과 관련해 삼국사기는 "문무왕 13년(675년) 9월 29일 당나라 장수 이근행이 군사 20만 명을 거느리고 매소성에 주둔했는데 우리의 군사가 공격해 쫓아버리고 전마(戰馬) 3만 380필을 얻었으며 그 밖에 노획한 병기도 이만큼 됐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매소성에 당의 대군이 주둔했었고 신라군이 대승을 거뒀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매소성 전투의 승리로 당나라를 한반도에서 축출함으로써, 신라는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의 땅을 차지하게 되어 이로부터 통일신라시대를 열게 된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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