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휴가도 세간의 관심사다. 우리 정치사를 들여다보면 보통 대통령이 즐기는 며칠간 여유 후에는 치밀하게 계산된 정국 구상이 발표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휴가를 보내는가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외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경우 하와이 해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모습이 파파라치의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고, 프랑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호화 바캉스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우리 대통령의 경우 가족과 함께 가벼운 운동이나 독서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정조(正祖)는 더위를 피하는 피서(避暑)보다는 더위를 이기는데 집중했다. 정조의 언행을 기록한 ‘일득록(日得錄)’에는 ‘더위를 이기는 데는 독서가 최고’ 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정조는 독서를 하면 몸이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지 않고 마음의 중심이 선다. 그래서 외부의 기운이 들어오지 못한다고 서술했다. 연암 박지원도 책 읽기에 힘을 보탠다. 그는 사촌형에게 보낸 서신에서 ’옷을 벗거나 부채를 휘둘러도 불꽃같은 열을 견뎌내지 못하면 더욱 덥기만 할 뿐’이라며 ‘책 읽기에 착심(着心)해 더위를 이길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휴가 유형은 피서다. 도심 속 무더위를 피해 해변으로, 계곡으로 떠나는 문화가 자리 잡은 지 오래. 여름철 휴가명소는 늘 피서객들로 인산인해다. '물 반, 사람 반'이라는 웃지 못 할 비유도 등장했다. 작렬하는 태양, 높은 휴가지 물가, 안전사고 위험은 호시탐탐 즐거운 피서를 위협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름휴가’ ‘바캉스’ ‘피서’에서 오는 휴식과 쉼의 어감마저 조금씩 퇴색되는 듯하다. 실제 우리 주위에는 새 힘을 충전하는 휴가보다는 소비 지향의 휴가, 소모적인 피서를 보내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휴가 전보다 더 심한 피로감이나 휴가 후유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고, 심지어 크고 작은 피부염이나 전염병을 얻어오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독서는 저비용 고효율의 여가 활동이다. 휴가철 독서 활동은 언제 어디서든 개인의 내면을 살찌우고 불필요한 활동을 최소화해 생체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다. 너무 오랜 시간동안 바르지 않은 자세로 책을 보지 않는 이상 신체에 미치는 부작용도 없다. 그뿐이랴. 발상을 전환해보면 별도의 전자제품을 사용할 일도 없고, 연료가 소진되지는 일도 아니니 전력사용량이나 이산화탄소 배출량 같은 사회적 비용의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대학(大學)에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고 했다. 자기 몸을 가다듬은 뒤에야 가정을 돌보고, 그 후에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정할 수 있다는 뜻으로 ‘수신이 만사의 근본’이라 해석되기도 한다. 이를 차용해 나름의 신조어 하나를 제시해 본다. ‘수신휴가(修身休暇) 치국평천하’. 온 국민이 책 읽는 여름휴가를 기대한다.
박춘희 송파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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