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im영역

[초동여담]다정(多情)도 病

스크랩 글자크기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인쇄 RSS
사람마다 개를 좋아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인데, 어떤 이는 먹는 것을, 또 어떤 이는 기르는 것을 좋아한다. 둘 다 좋아하는 사람도 가끔 있다. 몇 년 전인가 아파트에서 개를 기르겠다는 큰 결심을 하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진돗개를 선택했다.

그 영리한 녀석은 집에 온 지 일주일 만에 똥오줌을 가려 나를 감동시키더니, 조금 후엔 발자국 소리만으로 사람을 구별해 나를 또 한 번 감동시켰다(나중에 알고 보니 거의 대부분의 개들이 다 이랬다). 어쨌든 집사람 표현에 따르면 내 발자국 소리만 나면 현관문 앞에 와서 반갑다고 빙글빙글 돈다는 것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껑충껑충 뛰면서 달려드는데, 좀 크고 나선 이 녀석 때문에 양복바지를 여러 벌 버렸을 정도다.
사람을 좋아하는 이 녀석의 천성은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산책길에 낯선 사람이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면, 길바닥에 납죽 주저앉아 배를 보여 주기까지 했다. 개도 성격이 있는데, 한마디로 이 녀석은 무척 정(情)이 많은 개였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사흘간 집을 비워야 할 일이 생겼다. 개를 데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고, 그렇다고 어디다 따로 맡길 데도 마땅치 않아, 결국 녀석만 남겨 두기로 결정했다. 충분한 사료와 물을 발코니 제집 옆에다 마련해 두고, 혹시 그것도 모자랄까봐 마루에도 여분의 사료를 남겨 두었다. 방문은 닫아 두되, 마루판은 깨끗이 치워 녀석이 뛰고 노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도록 나름 신경을 썼다.

사흘 만에 집에 돌아와 현관문 앞에 서니 벌써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고 현관문을 발톱으로 긁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여니 꼬리를 흔들며 펄쩍 뛰는 녀석의 뒤로 펼쳐진 집 안의 모습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발톱으로 파헤쳐 놓은 장판과 마루판, 발톱으로 긁어놓은 책장과 가구들. 잠겨진 방문을 열지는 못한 대신 사흘간 열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 게다가 거의 먹지 않은 듯 보이는 사흘 치 사료로 집안은 난장판이었다.
사람이 없는 스트레스를 이 녀석은 이렇게 해소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정 다정(多情)도 병이었다.

글=여하(如河)





AD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본 뉴스

새로보기

이슈 PICK

  • 하이브-민희진 갈등에도…'컴백' 뉴진스 새 앨범 재킷 공개 6년 만에 솔로 데뷔…(여자)아이들 우기, 앨범 선주문 50만장 "편파방송으로 명예훼손" 어트랙트, SBS '그알' 제작진 고소

    #국내이슈

  • 때리고 던지고 휘두르고…난민 12명 뉴욕 한복판서 집단 난투극 美대학 ‘친팔 시위’ 격화…네타냐후 “반유대주의 폭동” "죽음이 아니라 자유 위한 것"…전신마비 변호사 페루서 첫 안락사

    #해외이슈

  • [포토] '벌써 여름?' [포토] 정교한 3D 프린팅의 세계 [포토] '그날의 기억'

    #포토PICK

  • 신형 GV70 내달 출시…부분변경 디자인 공개 제네시스, 中서 '고성능 G80 EV 콘셉트카' 세계 최초 공개 "쓰임새는 고객이 정한다" 현대차가 제시하는 미래 상용차 미리보니

    #CAR라이프

  • [뉴스속 인물]하이브에 반기 든 '뉴진스의 엄마' 민희진 [뉴스속 용어]뉴스페이스 신호탄, '초소형 군집위성' [뉴스속 용어]日 정치인 '야스쿠니신사' 집단 참배…한·중 항의

    #뉴스속OO

간격처리를 위한 class

많이 본 뉴스 !가장 많이 읽힌 뉴스를 제공합니다. 집계 기준에 따라 최대 3일 전 기사까지 제공될 수 있습니다.

top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