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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이성선의 '이변(異變)'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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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주지스님 방에는 파도만 치면 바다 울림으로 문고리가 떨린다. 하늘에 이변이 생겨 사천왕 눈빛이 빛나고 원통보전 주춧돌에 번개가 내릴 때 스님이 잡은 비파 천 년 잠든 현이 미친 듯 울며 깨어나, 바다를 부수고 세상을 부수고 하늘을 부수어 등 굽은 스님 절벽귀를 후려때린다. (......)

■ 고을 태수의 딸을 사랑하게 된 조신은 낙산사 관음보살에게 그녀와 짝이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고, 조신은 원망의 절규를 쏟아 내며 관음상 앞에서 잠이 든다. 그때 태수의 딸이 문득 다가와 내가 비록 부모의 영을 거절하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으나, 당신을 사랑하기에 이렇게 도망 나왔다고 말한다. 조신은 기뻐하며 여인을 데리고 고향에 가서 살림을 차린다. 50년간 둘은 사랑하며 5남매를 두었지만, 찢어질 듯한 가난에 시달렸다. 한 아이는 굶어 죽고, 한 아이는 구걸을 하다 개에게 물려 몸져누웠다. 부부는 함께 울면서 말한다.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헤어져서 입에 풀칠할 길을 찾아봅시다." 아내의 손을 놓고 헤어지려는 때에 조신은 꿈에서 깨어난다. 그의 머리는 백발이 되어 있었다. 그토록 간구하던 사랑이란 그에게 무엇이었던가. 죽은 아이를 묻었던 곳을 가서 파 보니, 돌미륵 하나가 나온다. 문고리 하나가 흔들리며 삶은 시작되지만, 잠깐 눈을 뜨면 욕망도 슬픔도 이미 끝나 있을 뿐이다. 작은 것이 크게 되는 것이 이변이지만, 많은 이변들은 그 크던 것들이 다시 작아지고 사라진다는 가르침을 되돌려 준다. 미친 사랑도 낙산사 앞에선 문고리 하나의 떨림으로 미세해진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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