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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은퇴식' 장미란 "역도 선수라 행복했다"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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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은퇴식' 장미란 "역도 선수라 행복했다"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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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왜 하고 많은 운동 중 하필 역도를 했을까 한 적도 있지만, 역도 선수여서 많은 사랑을 받아 행복했다."

한국 역도의 간판 장미란(30·고양시청)이 정든 바벨을 내려놓았다.
장미란은 10일 고양시청 실내체육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최성 고양시장, 박윤희 고양시 의회장을 비롯해 장미란의 부친인 장호철 고양시 역도연맹 부회장 등이 참석해 여제의 떠나는 길을 배웅했다.

장미란은 한국은 물론 세계 여자 역도 최중량급의 일인자였다. 2005~2009년엔 세계선수권대회를 4연패 했고, 2008 베이징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대회 등 4개 대회를 모두 석권하며 그랜드슬램도 달성했다. 여자 역도가 현재의 체급 체계를 이룬 1998년 이후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와 올림픽 금메달-은메달을 따낸 선수는 장미란이 유일하다.

장미란은 인사말에서 "안녕하세요. 역도선수 장미란입니다"라고 운을 띄우자마자 울먹였다. 간신히 감정을 추스른 그는 "런던올림픽을 노메달로 마치고 전국 체전을 치른 뒤, 3개월 정도 은퇴에 대해 고민했다"라고 털어놨다.
이어 "현역 연장에 대한 미련도 있었고 '이제 난 끝인가'란 괴로움도 있었지만, 새로운 인생의 2막을 연다는 희망을 품으면서 결심을 내렸다"라고 밝혔다.

장미란은 "아무 생각 없던 중3 여자아이가 역도를 통해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라며 "특히 런던올림픽 이후 국민 여러분의 격려와 응원은 평생 받기에도 모자랄 정도였다"라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은퇴 이후의 구체적 계획도 밝혔다. 장미란은 "기존에 이어오던 용인대 박사 과정이나 장미란재단 활동에도 힘을 기울이고, 훗날 IOC 선수위원에도 도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더불어 "지금껏 역도 선수로서 많은 것을 누렸기에, 이젠 내가 재능 기부를 통해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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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장미란의 일문입답.

-기자회견 첫 마디를 하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사실 다른 선수들 은퇴하는 걸 보며 난 저렇게 울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웃음) 혹시나 빼놓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 소감문을 써왔는데 괜히 준비했다. 회견장에 들어올 때만 해도 담담했는데 막상 이곳에서 입단식과 대회 뒤 환영식 등을 했던 추억이 떠오르며 은퇴가 정말 실감이 났다. 그래서 더 울컥했다.

-어떤 점에서 은퇴를 결정하게 됐나
런던올림픽 끝난 뒤 은퇴를 해야 하는 분위기가 되더라. (웃음) 처음엔 오히려 오기도 생겼지만, 전국 체전을 마친 뒤 고민을 많이 했다. 마음만큼이나 몸이 최선을 다해줘야 하는데 부족함을 느꼈다. 또 미래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는데, 문득 구체적 결심이 서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은퇴 결심한 지는 열흘도 안됐다. 복잡한 마음도 없고, 그저 시원섭섭할 따름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런던올림픽 이후가 아닐까 싶다. 그 전에도 좋은 기록과 성적을 내면서 주목을 받았지만 사실 실감이 안 났다. 그런데 런던올림픽을 통해 많은 분들의 마음이 담긴 응원을 받으며 내가 누구보다 사랑받는 선수라는 점을 가슴 깊이 느꼈다.

-이제 평범한 30대 여자로서 돌아간다.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특별한 건 없다. 그저 재단활동, 학교 공부에 충실히 임하고, 꿈에 도전하기 위한 준비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특히 선수였기에 누리지 못했던 학창 시절도 보내고, 공부도 충실히 할 생각이다. 지금까진 선수로서 혜택을 누렸다면 이젠 매순간 선수일 때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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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란하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가 나였다면 좀 더 현역으로 뛰지 않았을까. (웃음) 주변 분들이 나보다 아버지를 더 위로하라고 할 정도로 아쉬워하신다. 내가 운동에만 집중해야 할 때 대외적 활동 등을 아버지께서 맡아주시는 등 안팎으로 많이 도와주셨다. 어머니도 먹는 것 하나하나 챙겨주시고 늘 나를 위해 기도해주셨다. 가족의 도움이 있었기에 선수 생활을 오래 할 수 있었다. 지금부턴 내가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예전 자신처럼 꿈이 없는 중3 소녀들에게 조언한다면
그때 난 덩치만 크고, 자신감 없는 아이였다. 비슷한 친구들을 보면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안다. 자발적으로 역도를 시작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나의 소질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내려주신 어른들 덕분이었다. 내게 진심으로 조언하는 주변분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누구나 잘할 수 있는 일은 한가지씩 있다.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으면 한다.

-IOC선수위원에 대한 공식 발언은 처음이다. 특별히 결심한 계기가 있나
2008 베이징올림픽 이후 문대성 위원이 여러 면에서 노력하시는 걸 봤다. 선배의 모습을 보며 같은 꿈을 갖는 선수가 많아졌다. 선수위원이 된다면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재단 활동과도 연계해 많은 꿈나무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직 어떤 준비를 구체적으로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더 많이 배워야 할 것 같다.

-오랜 시간 세계 정상에 있을 수 있던 결정적인 힘은 무엇이었나
다른 종목 선수들을 부러워한 적도 있다. 역도보다 쉬워 보여서. (웃음) 가만히 생각해보면 역도선수로서 내가 가진 신체적 장점이 다른 운동을 했다면 발휘되진 않을 것 같다. 내가 선택한 길인만큼, 선수 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하는 것들은 과감히 버리고 규칙적 생활을 유지했다. 또 여러 힘든 날을 이겨낼 수 있던 원동력은 신앙이었다. 덕분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노력할 수 있어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동료 선수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인간 장미란의 매력은 무엇일까
아마 태릉에서 10년 동안 늘 봐왔기에 친숙한 느낌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또 외모 자체가 편하게 생긴 것도 한몫한 것 같다. (웃음) 잘생긴 남자 후배가 친근하게 다가오면 그렇게 기분 좋더라. 태릉 선수촌에서 오래 있을 수 있던 동기부여가 됐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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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호 기자 spr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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