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과정에서 옛 소련 시절 양성된 유능한 두뇌들은 재빠르게 비즈니스에 뛰어들어 돈방석에 앉았다. 러시아 최고의 부자가 된 빅토르 펠릭소비치 벡셀베르크(55) 레노바그룹 회장 역시 이같은 ‘올리가르히(신흥재벌)’ 중 한 사람이다.
또 그가 공동 설립한 SUAL은 이후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업체인 RUSAL로 성장했고, 벡셀베르크는 자신의 회사들을 모아 광산·석유·통신 등 업종을 아우르는 레노바그룹으로 묶었다.
벡셀베르크는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가 러시아에서 으뜸가는 부자다. 러시아 최대 국영 석유기업 OAO로스네프트가 러시아·영국 합작 석유개발 컨소시엄인 TNK-BP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지분 매각으로 재산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이 거래 덕분에 올해 초까지 러시아 갑부 랭킹 8위였던 벡셀베르크는 15억달러를 벌어들이면서 총 재산 180억달러로 지금까지 최고 부자였던 철강·통신재벌 알리셰르 우스마노프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전세계 억만장자 순위에서는 40위로 뛰어올랐다.
막대한 부를 쌓은 그는 세계 각지에 흩어진 러시아의 문화유산을 다시 되찾는 데 관심을 가졌다. 그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19세기 러시아 황실의 보물 ‘파베르제의 달갈’을 가장 많이 수집한 인물이기도 하다. 1885년 알렉상드르 3세 황제가 황후를 위한 부활절 선물로 명장 칼 파베르제에게 제작을 의뢰한 ‘파베르제의 달걀’은 단 50개만이 만들어져 오늘날 42개만이 남아 있다. 2004년 벡셀베르크는 미국 출판재벌 포브스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파베르제의 달걀 9개를 사들였고, 2007년 일반에 공개됐다. 그는 총 15개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06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로웰하우스에 보관되어 있던 모스크바 다닐로프 수도원의 종들을 되찾아오는 데 나서기도 했다. 러시아 정교회의 뿌리로 불리는 이 종들은 스탈린 집권기인 1931년 파괴될 뻔했으나 당시 러시아 주재 미국 외교관이 종을 사들여 하버드대에 기증하면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이 종의 반환은 러시아 정교회의 숙원사업이었지만 엄청난 운반비용이 걸림돌이었다. 벡셀베르크는 운반비용과 하버드대에 기증할 복제품 종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약 100만달러를 기꺼이 댔고, 2008년 종은 80년만에 다시 수도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김영식 기자 gr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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