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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 칼럼]안철수의 카탈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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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한 여자'의 러브스토리에서 '안철수 현상'으로 생각이 건너뛴 것은 순전히 '카탈로그(catalog)'란 단어 하나 때문이었다. 소설가 최민석은 단편 '쿨한 여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어란 언제나 카탈로그에 존재하는 옷과 같다. 실제 입어보면 사이즈가 다르거나, 색상이 다르거나 해서 온전한 것이 될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문득 '안철수 현상'이 떠올랐다. 홀연히 나타나 세상을 흔들어 놓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간 안철수. 떠나간 후에도 계속되는 여진. 그런 안철수의 카탈로그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의 카탈로그를 얼마나 읽어보고 그를 말하는 것일까. 카탈로그가 있기나 한 것일까. 그 역시 최민석이 말하는 언어나 옷과 같은 존재일까.
안철수 현상을 둘러싼 진단과 논란은 난무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현상'의 소회를 아전인수로 말할 뿐이다. 그를 허공에 띄워놓은 채 추상적인 단어를 쏘아 올린다. 시대를 구제할 영웅이 되는가 하면 위선 여부를 탐색하기도 한다. 정치인으로서의 잣대를 들이대고 다그치거나 몇 마디 말을 떼어내 꼬리를 잡는다. 그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 그래도 정치판에는 꼭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카탈로그를 정밀하게 살펴보거나 옷을 입어 본 후에 투정하는 방식이 아니다. 카탈로그를 들춰볼 생각도 없다. '대선주자 안철수'와 같은 존재할 수 없는 카탈로그를 내놓으라 윽박지르는 식이다. 안철수 카탈로그는 존재하기는 하는가. 있다. '안철수의 철학'이나 '기업인 안철수'를 꺼내볼 수 있는 카탈로그는 의외로 여럿이다. 그가 펴낸 책자만도 22권에 이르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책이 둘이다. 칼럼 중에는 '안철수가 말하는 안철수'도 있다.

종합편도 있다. 안철수연구소 홈페이지의 '설립자 코너'다. 코너도 특이하지만 내용도 그의 성격을 드러내듯 다양하고 세밀하다. 이력, 칼럼, 퇴임사에서 갤러리에 이르기까지 안철수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공약만 추가한다면 그대로 선거용 카탈로그가 될 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23년 동안 있는 그대로 언론에 노출돼 왔다고 말한다.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는 감정을 절제하고 1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생각을 전하려 했고, 한 번도 말을 뒤집은 적이 없다고 한다. 예전에 쓴 책이나 칼럼, 강연, 대담일지라도 지금의 그를 탐색하는 데 무리가 없다는 스스로의 보증인 셈이다.

새로운 리더로 기대를 건다면 또는 한때의 거품이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먼저 그의 카탈로그를 찬찬히 읽어보고 판단하는 게 순서다. 세상이 궁금해 하는 그의 인생관, 기업관(경제관), 정치 가능성, 박근혜 대항마로서의 안철수를 상상해볼 수 있는 편린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기업관, "수익은 기업의 목적이 아니라 결과다." "정직하게 사업해도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기업의 약탈행위를 저지해야 하나 정부가 손놓고 있다." (공생이 떠오른다.)

정치, "선택 앞에는 과거를 버리는 게 중요하다." "한국사회의 문제는 기득권의 과보호다. 이를 바꿔나가는 것이 정치다." "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리더십은 21세기 국가경영의 근간." "정치인 기사는 읽지 않는다. 행동만 본다." "천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값지다." (정치 의지가 없지 않다.)

박근혜 라이벌로서. "원칙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북(正北)을 가르키는 나침반이다." "말을 바꾼 적이 없다." "기본이 중하다." (공학도와 벤처 창업자, 원칙과 룰을 강조하는 등 공통분모가 많은 두 사람이 여론의 링에 올라 있는 것은 흥미롭다.)

하나 더. 아이유도, 신동엽도, 지못미도 모른다는 안철수. (그래도 젊은이들은 왜 그를 좋아할까.)




박명훈 주필 pmh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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