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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뇌 단련으로 지력 향상?…책상물림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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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머피 폴 '익스텐드 마인드'
인지 피트니스·두뇌 체조 등
뇌 단련으로 지능 향상은 착각
두뇌와 신체·도구 잘 이용하고
인간관계 통해 인지능력 극대화
가슴으로도 생각해야 인생 성공

[장은수의 책으로 읽는 세계]뇌 단련으로 지력 향상?…책상물림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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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물림이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는 건 많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른이 될 때까지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서 교과서만 열심히 파던 사람, 몸으로 두루두루 사회를 체험하지 못한 채 머릿속으로만 세상을 익힌 샌님들이다.

책상물림들은 인간이란 이성보다 늘 감정이 앞서는 존재임을 잘 받아들이지 못해서 실제 상황에서 수시로 벌어지는 복잡미묘한 갈등이나 윤리적인 딜레마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또한 일 벌어진 이후에 정리된 데이터를 바탕삼아 사유하는 습관 탓에 변화무쌍한 현장에서 생겨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일이 많다. 선진국일수록 별다른 사회 경험이 없는 교수들을 장관이나 차관 같은 고위직에 곧바로 임명하는 경우가 드문 이유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책상 앞에 붙잡아두고 머리로만 생각하는 일에만 집중하게 하는 현대 교육의 행태는 책상물림을 양산해 왔다. 미국 과학작가 애니 머피 폴의 '익스텐드 마인드'(알에이치코리아)에 따르면, 이런 교육 방식의 바탕에는 인간 인지능력의 한계를 머리에 가두는 사고방식, 즉 ‘두뇌에 갇힌 사고’가 놓여 있다. 우리가 사고할 때 주로 뇌만 쓴다고 착각하고, 바깥세상과 함께 다채로운 방식으로 지능을 단련하려 하기보다 책상 앞에서 머리만 굴리도록 하는 것이다.

지능훈련을 머리에 ‘몰빵’한 사람들은 상황에 맞춰서 유연하게 사고하고 문제에 맞춰 창의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 가만히 앉아 생각만 하는 사람은 움직이는 세계를 이해하면서 참신하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서투르게 되어 있다. 현실의 넘쳐나는 뉘앙스는 언제나 머리뼈 속에 갇힌 1.4킬로그램짜리 뇌의 한계를 넘어선다.


그런데도 이런 교육방식이 유행하는 이유는 뇌를 단련하면 지력을 기를 수 있다고 흔히 착각하기 때문이다. 인지 피트니스(CogniFit), 두뇌 체조(Brain Gym) 같은 유행어들은 그러한 잘못된 편향을 선연히 드러낸다. 뇌 근육 같은 말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단지 비유에 불과하다. 실제로 사고는 전적으로 뇌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신체나 도구, 장소나 친구 같은 뇌 바깥에 있는 여러 자원과 조율과 조정을 반복하면서 행하는 소통 과정에 가깝다. 따라서 머리 좋은 사람들은 능숙한 지휘자이다. 이들은 두뇌와 신체, 장소와 인간관계를 적절히 이용해서 인지능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생각이 신체 상태와 얼마나 밀접한지는 아플 때를 떠올리면 간단히 알 수 있다. 몸이 좋지 않으면, 생각은 엉망이 된다. 열이 오를 때 우리 사고는 견고하고 지속적이고 논리적이지 못하고, 몽롱하고 단속적이며 뒤죽박죽 변한다. 반대로 신체 상태를 적절히 조절할 수 있다면, 사고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

가령, 우리에겐 신체 내부의 장기, 근육, 뼈 등에서 일어나는 신호들을 파악하는 감각, 즉 내수용 감각이 있다. 내수용 감각은 우리의 현재 상태를, 다시 말해 외부 세계에서 수집된 여러 정보 흐름에 따라서 이 순간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알려줄 뿐 아니라, 이에 발맞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내수용 감각을 단련한 사람들은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도전적인 요소에 대해 더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강렬한 감정을 만끽함으로써 상황을 더 능숙하게 다스리고, 더 깊은 세심함과 통찰력으로 사람들과 사귈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 몸은 의식이 처리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머리에만 의존하는 사람보다 가슴으로도 생각하는 사람들이 인생을 더 잘 살아가는 이유이다. 내수용 감각을 단련한 사람들은 복잡한 사건에 처했을 때 더 나은 결정을 내리고, 혼란한 상황에 빠졌을 때 스트레스를 쉽게 이겨낸다.


우리 인지는 환경 전체에 분포되어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가 처한 장소를 적절히 관리함으로써 생각의 질을 높일 줄 안다. 가령, 우주비행사들은 지속적 불안을 겪는다. 이들은 창문을 통해서만 세상을 내다볼 수 있기에 자연의 서식지인 푸르른 초목, 신선한 공기, 끊임없이 변화하는 햇빛 등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이는 집이나 자동차, 교실이나 사무실에 갇혀서 머리만 싸안고 있는 현대인의 상황과 무척 유사하다. 생각이 멈추어 있을 때, 책상에 붙잡혀 있기보다 산책이나 운동을 하면 생각의 질이 달라진다. 루소, 니체 같은 철학자들이 동시에 뛰어난 산책자이기도 했던 이유이다.


반대로, 낯설고 불안한 환경에 처했을 때는 환경에 소속감을 나타내는 신호를 추가하면 좋다. 익숙한 장소에 있을 땐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자제력을 크게 발휘하지 않아도 정신적, 지각적 과정이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창조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음에 붙잡히는 대신 사고와 장소를 능숙하게 결합해서 사유의 질을 높일 줄 안다.


똑똑하고 창의적인 사람들은 도구를 사용해서 주기적으로 머리를 비워낸다. 이들을 틈날 때마다 머릿속에서 불필요한 정보를 없애고 밖으로 빼내어 세상에 옮긴다. 떠오르는 생각을 종이에 적어서 메모해 두거나 도표로 정리해서 압축하는 것이다. 문제해결과 아이디어 생성 같은 고도의 작업을 위한 정신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를 항해할 때, 찰스 다윈은 떠오르는 생각들을 끝없이 일지에 옮겨적음으로써 새로운 관찰을 하고 창조적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여력을 확보했다. 진화론은 어쩌면 메모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창의적인 사람들은 생각을 다시 사회화하는 방법을 안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끝없이 대화하고 토론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가르치거나 배우고,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생각의 부담을 나누고, 각자의 전문성을 발전시키며, 집단적 협업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 간다. 혼자 사고하는 사람보다 함께 사고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들이다. 골방의 외로운 천재보다 골목길 친근한 동무가 인생에선 성공할 확률이 높다.


생각은 입력, 출력, 완료와 같은 선형 경로로 작동하지 않고, 뇌, 신체, 세계, 인간 사이를 오가는 뒤엉키고 구불구불한 경로를 따라가도록 되어 있다. 머리뼈 속에 생각을 가두고, 뇌 밖에 존재하는 세계와 만나지 않을 때 생각은 발달하지 않는다. 책상물림을 양산하는 교육을 멈추고, 세상과 함께 생각하는 법을 가르칠 때다.


장은수 출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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