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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히든 히어로스' 저자의 경고 "메모리 치킨게임 보다 지금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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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인터뷰
'엔지니어 수준이 곧 회사 경쟁력' 강조
"삼성, 메모리 때보다 시스템 과제 크다"

[인터뷰]'히든 히어로스' 저자의 경고 "메모리 치킨게임 보다 지금이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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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밸리는 새롭고 배우고 싶은 것이 넘치는, 인간이 건설한 천국이었다.”


1980년대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공부한 한 한국인 유학생이 최근 쓴 책에 남긴 글이다. 그는 인조(人造) 천국을 뒤로 한 채 유학을 보내 준 한국 회사로 돌아왔다. 그가 배워 온 것들이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 발전의 초석이 됐다.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 이야기다.

1976년 삼성반도체(삼성전자 반도체 전신) 엔지니어로 입사해 30년간 일했다. 이후 SK하이닉스 사내이사를 역임했다. 그의 인생이 바로 한국 반도체의 역사다. 그런 임 전 사장이 최근 한국 반도체 산업 역사와 과제를 다룬 책 <히든 히어로스>를 내놨다. 임 전 사장을 만났다.


전국 수석이 공대로…韓 반도체 성장기엔 '인재' 있었다

―펴낸 책을 보니 과거 우리나라는 사활을 걸고 반도체 인재를 확보했다.


"1970년대엔 전국 수석이 전자공학과에 갔다. 정부가 이공계 인재를 늘리고자 노력했다. 1971년엔 특수 대학원인 한국과학원(옛 KAIST)을 세웠다. 파격적인 대우로 선진국에서 연구한 젊은 교수진을 데려왔다. 입학생에겐 병역 면제 혜택도 줬다. 부산 경남고를 나왔는데 반에서 1등을 한 나는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2등은 기계공학과에 갔다. 그게 당시 사회 분위기였다.”

―왜 반도체 회사에 입사했나.


“전자공학을 공부해보니 반도체가 가장 흥미로웠다. 졸업할 무렵 한국반도체 채용 공고를 봤다. 입사하면 한국과학원 석사 과정에 보내준다는 제안에 마음이 끌렸다. 삼성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고 인재 확보를 위해 애쓰던 시기였다. 치열한 경쟁을 거쳐 입사했다. 1976년 한국과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인재가 왜 중요한가.


“결국 엔지니어 퀄리티가 회사 기술 경쟁력을 결정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쟁탈전이 벌어질 당시 국내 엔지니어 수준이 일본 등 경쟁국보다 높았다. 지금은 뛰어난 이공계 인력이 의과대학이나 플랫폼 기업으로 간다. 국가가 의지를 갖고 반도체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임 전 사장이 양향자 국회의원과 대담해 담은 내용의 '히든 히어로스' / [사진=김평화 기자]

임 전 사장이 양향자 국회의원과 대담해 담은 내용의 '히든 히어로스' / [사진=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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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시장 진입, 메모리 1등 토대 마련

―언제 메모리 반도체 업무를 맡았나?


"1978년 초 과학원을 졸업한 뒤 회사로 복귀했다. 그때부터 메모리 사업 부서에서 일했다. 1981년엔 삼성 해외연수 1호로 선발됐다.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현지 삼성 메모리연구소에서 일했다.”


―메모리연구소는 어떤 곳이었나.


“재미 공학자인 이상준, 이일복 박사 주도로 D램을 개발하던 곳이다. 현지에서 메모리 기술자를 고용해 운영하고 있었다. 1984년엔 나를 포함해 병역특례로 입사한 신입 엔지니어들 30여명이 파견됐다. 미국에서 기술을 습득한 뒤 회사 메모리 기술 자립을 돕는 역할을 했다. 연구소 회식 자리에서 애국가를 불렀을 정도로 사명감이 컸다.”


―삼성이 기술 자립을 어떻게 이뤄냈는지?


“1985년 귀국 후 기흥 반도체연구소에서 일했다. 삼성전자가 메모리 사업 진출을 선언한 지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월화수목금금금, 주 7일 일했다. 구성원이 노력했기에 빠르게 반도체 기술력을 높일 수 있었다. 사실 한국이 비교적 빨리 메모리 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선진 기술을 따라갈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1986년 1M D램을 자체 기술로 개발했다. 이후 여러 기술과 제품을 선보이며 완전한 기술 자립에 성공했다.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메모리 시장에서 1위를 했던 때는 어땠나.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D램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으로 처음 1위에 올랐다. 다음 해에는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도 1등을 했다. 당시 일본보다 기술력이 높진 않았다. 대신 생산량으로 밀어붙였다. 90년대 후반에는 기술력으로도 일본을 앞질렀다. 삼성 기술자 수가 경쟁 회사의 두 배였던 때다. D램 대공황 시기로 가격이 폭락해 어렵던 시기도 이겨냈다. 삼성은 다양한 D램 제품을 전략적으로 배치해 살아남았다. 가격이 폭락한 제품 생산을 줄이고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제품을 상대적으로 많이 생산했다.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전략이었다. 그 결과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1위 업체로 다시 태어났다.”

[인터뷰]'히든 히어로스' 저자의 경고 "메모리 치킨게임 보다 지금이 위기" 원본보기 아이콘

메모리 과제보다 더 큰 '시스템' 장벽

―최근 반도체 지원법 이슈 등으로 업계 안팎이 시끄럽다.


"안타깝다. 정치권에선 대기업이니 알아서 클 거라며 지원을 아낀다. 시장에선 메모리 1위 타이틀이 영원할 것으로 여긴다. 그렇지 않다. 과거 메모리 사업 주도권을 놓고 치킨게임을 하던 때보다 현재가 더 위기라고 본다. 히든 히어로스란 책을 쓴 이유 가운데 하나가 과거 경험에서 현재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왜 지금이 더 위기라고 보는지?


“삼성전자는 메모리 사업으로 큰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안심할 때가 아니다. 미국이 계속 견제하고 있다. 게다가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분야 경쟁력이 약하다. 파운드리와 이미지센서 시장에서 모두 2등이다. 1등하고 격차를 줄이기가 쉽지 않다.”


―삼성전자가 TSMC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보나.


“반도체 시장에선 2위는 돈을 못 번다. 예를 들어 시장 1위 기업의 점유율이 40%라고 치자. 2위 기업이 20%로 절반 정도이고. 매출 차이는 두 배 정도다. 하지만 이익 차이는 10배 넘게 난다. 심지어 메모리보다 시스템 분야는 점유율 차이로 발생하는 이익 차이가 더 크다. 삼성전자로선 쉽지 않은 싸움이다. 당장 몇 년 안에 순위를 뒤집긴 힘들다.”


―한국 반도체가 경쟁력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우수한 엔지니어를 늘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메모리처럼 시스템 반도체 산업도 성장할 수 있다. 대만 인재들은 모두 TSMC를 포함한 반도체 업체로 간다. 한국 반도체 산업 미래가 파운드리 산업에 달렸다. 정부의 전방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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