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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없는 '삼성 파운드리' 분사설…'돈없어 생산라인 깔기도 버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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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사하면 고객신뢰 높이는 데 유리
투자금·사업 시너지·R&D 등 변수
2004년부터 분사설 삼성은 "어렵다"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별도 법인 안 만드냐는 문의에 시달리는 조직이 있다. 삼성 파운드리(반도체위탁생산) 사업부다. 애플 같은 큰 고객에게 신뢰를 받으려면 분사하는 편이 좋다. 애플은 아이폰을 들고 삼성전자 갤럭시와 15년 이상 치고 받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서 만든 부품을 받아 아이폰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삼성은 "분사는 어렵다"고 한다. 투자금, 기술 문제 때문이다.


삼성 파운드리는 올해 일곱살이다. 원래 시스템LSI(고밀도집적회로) 사업부에서 2017년 별도 사업부로 다시 태어났다. 태어나기도 전인 2004년부터 분사설에 시달렸다. 당시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가 파운드리 사업부를 떼어내 매그나칩반도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삼성도 따라하지 않겠냐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20년간 그런 일은 없었다.

분사설이 또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작년 7월이다. 7월 초 한 증권사가 '지정학 패러다임 변화와 산업'이란 보고서를 냈다. 우수 인력 유치 대책으로 분사를 제시했다.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입버릇처럼 말한 '메기론'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삼성전자란 이름표를 떼고 강력한 위기의식을 느낀 구성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일하도록 만들란 이야기다.


7월 말 삼성전자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선 강문수 파운드리 사업부 부사장이 "2025년엔 자체 투자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수익성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고 했다. 자체 투자가 분사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사업부에 돈이 충분하다면 모회사에 기댈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1위 TSMC에 시장 점유율이 크게 밀리는 삼성 파운드리로서는 분사를 통해 고객 신뢰를 높일 필요가 있다. 장중머우(모리스 창) TSMC 창업주 겸 전 회장은 심심하면 "우리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며 삼성전자를 돌려 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작년 6월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 등과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이미지 출처=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작년 6월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 등과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이미지 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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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 법인을 따로 만드는 게 어려운 이유는 네 가지다. 투자금 확보, 사업 시너지 약화 가능성, 연구개발(R&D) 동력 저하 우려, 장기 산업재편 리스크 대응이다.

삼성 파운드리 매출로는 분사 후 자생력을 갖추기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매출 추정치는 20조원대. 연 매출로 20조~30조원이 드는 생산라인 1개도 제대로 깔기 어렵다. 돈이 없어 섣불리 분사를 추진하기 어렵다.


분사하면 삼성전자가 쟁여 놓은 현금성 자산 120여조원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울 것이란 고민도 있다. 삼성전자가 현금을 쌓는 이유는 시스템반도체 메가 딜 때문이란 추측이 나오는 상황. 인수합병(M&A) 논의라도 진행되면 파운드리 사업부를 별도 법인으로 떼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사업부와의 공동 R&D 작업 등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렵다. 삼성 메모리 사업부 관심사는 기억뿐 아니라 연산도 잘하는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다. 작년 연초 그룹 선단 R&D 조직인 종합기술원이 주도해 영국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한 자기저항메모리(M램) 인메모리(In-Memory) 컴퓨팅 논문이 화제였다. 논문 발표 후 삼성은 미국 AMD와 함께 HBM-PIM(High Bandwidth Memory-Processing in Memory) 반도체를 만들었다. HBM-PIM는 메모리 반도체와 인공지능(AI) 프로세서를 합친 제품이다. 기존 D램처럼 데이터 저장만 하는 게 아니라 연산도 하는 부품이다. 여기에 인메모리 기술이 들어갔다. 파운드리 법인만 떨어져 나가면 시너지가 약해질 수 있다.


실체 없는 '삼성 파운드리' 분사설…'돈없어 생산라인 깔기도 버거워' 원본보기 아이콘

장기적으로 파운드리 사업이 미세 공정 경쟁에서 첨단 패키징 경쟁 체제로 넘어가면 지금처럼 종합 반도체기업(IDM,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모델을 유지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은 웨이퍼에 나노미터(nm·10억 분의 1m) 단위 미세 회로를 새기는 경쟁이 한창이다. 앞으로는 이종집적 설계 경쟁이 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칩 하나에 회로를 미세하게 그리는 데 집착하지 않고 여러 개 칩을 하나로 붙여 효율을 높이는 기술이 중요해진다는 의미다. 이때 파운드리 법인 분사보다 IDM으로 남고 주변 전후방 업체와 협업을 강화하는 게 나을 수 있다. '뭉쳐야 산다'는 뜻이다.


지난 20년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을 맡은 사람들은 "파운드리 분사는 없다"고 수없이 말했다. 지금도 '분사는 안 한다'는 입장은 확고하다. 애플 등 고객이 삼성 파운드리를 의심해도 "차이니즈 월(정보교류 차단 장치)을 제대로 갖췄다"고 대응한다.


어렵지만 2025년 파운드리 법인 분사를 추진할 수 있다는 목소리를 무시하긴 어렵다. TSMC에 고객 확보, 수율(정상품 비율) 모두 밀리는 상황이다. 반전 카드가 절실하다. 파운드리 사업부 재무 안정성이 높아질수록 분사설에 더 힘이 실릴 가능성이 크다. 강문수 부사장이 언급한 "2025년 자체 재원 마련" 발언을 시장이 힌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마침 지난달 31일 4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부는 주요 고객사 판매 확대로 최대 분기 및 연간 매출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작년 9월 경계현 DS 부문장도 분사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20년간 되풀이한 "안 한다" "말도 안 된다" "터무니없다"던 반응보다는 톤이 낮아졌다고 볼 여지가 있다.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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