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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때]브랜드는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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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서믿음 기자] 흔히 대가는 까다로운 취향을 지녔다고 생각하기 쉽다. 셰프도 마찬가지. 영국의 셰프 고든 램지는 음식에 관한 가차 없는 독설로 국내에도 잘 알려졌다. 얼핏 그들은 대단한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부응하지 못한 결과는 실패로 간주하는 듯하다. 하지만 책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위즈덤하우스)’의 저자인 김도영 네이버 브랜드기획자는 다른 의견을 표한다.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 날카로운 미식가보다는 온화한 잡식가로 사는 게 몇 배는 더 즐겁다"는 것. 그는 의외로 많은 셰프들은 음식에 관한 관대함을 바탕으로 더 많은 음식의 더 깊은 맛을 이해하며 좋은 포인트들을 찾아간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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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저자는 두 개의 선을 소개한다. 하나는 구현하고 싶은 본질을 정교하게 압축한 ‘경험의 선’, 다른 하나는 외부 세계를 아우르는 ‘주변의 선’. 그는 "브랜딩과 관련한 일을 하거나 혹은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항상 ‘선’ 위에 자리해야 한다"며 "제아무리 뛰어난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결국 그 브랜드가 위치하게 될 곳은 수많은 브랜드가 공존하는 거대한 우주와도 같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예 가운데 하나는 일본의 안테룸(사진)이다. 교토를 무대로 하는 아티스트들이 객실을 하나씩 맡아 기획하고 설계한 ‘컨셉룸’으로 하나로 단정하기 어려운 교토스러움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여타 호텔이 선보이는 테마룸과는 차원이 다르다. 벽지부터 바닥재, 가구, 테라스 디자인, 룸 스프레이까지 모두 아티스트의 디렉팅에 따른다. 저자는 이를 ‘시퀀스(분절된 요소가 모여 하나의 연속된 것을 이룸)’라 지칭하며 "교토라는 경험들을 압축한 한 장의 지도"라고 평가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브랜드의 끝은 향수다. 제품이라고 하지만 용기를 벗어나는 순간 무형의 물질과 다를 바 없고, 누구의 몸에, 어느 부위에, 어떤 체온에 닿느냐에 따라 향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향수 브랜드 ‘크리드’는 맞춤형 향수의 정수다. 향수를 만들기 위해 의뢰인에게 수십 가지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어떨 때 의지가 샘솟고, 어떨 때 만족감을 느끼는지 등. 이런 수집 과정을 거쳐 비로소 조향을 이뤄내는데, 저자는 나로 대표되는 ‘향’을 지닌다는 건 그것 자체로 브랜드라 칭하기에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의 향’을 브랜드로 인지한 저자는 그런 느낌을 업무에도 적용했다. 본인조차 정리되지 않은 다양한 느낌을 나열하며 모호하게 주문하는 고객에게 어떤 사람의 향을 원하는지를 묻는 것. "혹시 사람으로 치면 어떤 느낌일까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당황하지만 "유재석님 같은 느낌을 원하는 걸까요? 편하고 재미있고, 누구나 좋아하는 만인의 인물이면서도 뭔가 자기만의 갖춰진 세계가 있는 그런 느낌이요" "아니면 성시경님이나 윤종신님 스타일에 더 가까울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의외로 "막연하고 단편적으로만 존재하던 요구사항들이 특정 캐릭터의 향을 맡는 순간 선명하고 구체적인 경험으로 떠오른다"고 설명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크리드 효과’를 창안한다. 1910년 출간한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통해 널리 알려진 ‘프루스트 효과’와 비교되는 개념으로, 프루스트 효과가 냄새가 특정 기억을 호출하는 현상을 지칭한다면, 크리드 효과는 어떤 냄새로 ‘누군가’가 떠오르는 현상이다. 저자는 "향기 뒤에 ‘남긴다’는 표현이 따라붙는 건 누군가가 부르면 언제든 다시 기억의 문을 열고 나올 만큼의 적당한 양은 남겨놓을 수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좋은 향기를 많이 남길 수 있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브랜딩이자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설명한다.

김도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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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숙성을 브랜드의 중요한 요소로 손꼽는다. 오랜 시간 견뎌낼수록 농익은 가치를 선사하기 때문인데, 단순히 세월만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나파밸리 ‘브이 사뚜이’ 와이너리에서 만난 소믈리에의 말을 인용한다. "와인은 그냥 저장해둔다고 알아서 숙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해 수확한 포도 품종은 물론이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기후나 환경,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다양한 외부 요인들에 맞춰 계속 관리해야 하는 포인트들이 있죠. 한 달 사이에 오크통의 위치를 여러 번 바꾸기도 하고 증발하는 양에 따라 저장고의 위치를 여러 번 바꾸기도 하고, 저장고의 압력을 미세하게 조절하기도 하거든요. 가만히 두기만 하는 건 숙성이 아니에요. 숙성은 우리가 원하는 맛을 얻기 위해 계속 초점을 맞춰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죠."

휴먼 브랜드 숙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자는 여러 브랜드에 관심이 있다면 그 브랜드가 제안하는 것들을 하나씩 내 삶 속에 끼워 넣는 ‘조율’을 권한다. 뻔하고 익숙한 조언이라도 누가, 언제, 어떻게 건네느냐에 따라 그 온도와 느낌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이 타이밍에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어"라며 감각을 깨우는 경험을 할지도 모르니까.


열여덟 개 브랜드 이야기를 전하는 저자는 말한다. "브랜딩이라는 게 꼭 직업으로 브랜드를 다루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 하나 정도는 깊이 들여다보고 분석하고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고 이해해볼 수 있으며 그 브랜드를 통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도 있고 가끔은 브랜드가 전하는 메시지대로 행동하고 살아볼 수도 있다"고 말이다.


브랜드로부터 배웁니다 | 김도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348쪽 | 18,000원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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