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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산책] 서구중심적 사고에 의문点을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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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작가 다니엘 보이드 서울 첫 개인전 '보물섬'

화폭 위 수많은 점은 '세상 보는 렌즈'
서구식 전체주의에 맞서는 다양성 표현
회화 24점과 거울조각, 영상 등 전시

호주 작가 다니엘 보이드.(사진제공=국제갤러리)

호주 작가 다니엘 보이드.(사진제공=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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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최동현 기자] 1770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은 망원경으로 수평선 너머에 있는 한 대륙을 응시했다. 렌즈를 통해 그의 시선이 가 닿은 미지의 대륙은 4만년 전 정착한 원주민들의 낙원이었다. 하지만 쿡에게는 그저 영국의 부(富)를 채워줄 땅덩이에 불과했다. 원주민들은 계몽해야 할 미개인들이었다. 당시 신대륙을 바라보는 서유럽의 시선이 대부분 그랬다. 쿡이 다녀간 뒤 백인 이주민들은 그곳으로 물밀 듯 몰려가 원주민을 대량 학살했다. 이후 그곳은 백인들의 땅 호주가 됐다.


현재 호주에 남은 원주민은 약 20만명이다. 호주 전체 인구의 0.77%에 불과하다. 이들은 ‘애보리지니(aborigine)’라는 특수 용어로 지칭될 만큼 희귀 민족이 됐다. 애보리지니의 후예이자 현대미술 작가인 다니엘 보이드가 서울 국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연다. 자기 선조의 역사를 제 입맛대로 재단한 서구에 대해 비판하고 이를 보편의 문제로 끌어올려 공감대까지 형성하려는 목적에서다.

보이드의 작품 대다수는 점묘법으로 그려졌다. 검은 린넨 캔버스에 투명하고 볼록한 ‘풀(glue)’을 무수히 찍은 형태다. 각 점들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볼 때 쓰는 ‘렌즈’다. 보이드는 이 렌즈에 대해 "우리가 한 집단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지각하는 방식, 다시 말해 복수성과 다양성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이는 쿡의 렌즈, 즉 ‘합리’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보편주의적·전체주의적인 서구적 이성과 반대되는 인식이다.


다니엘 보이드가 플라톤 초상을 그린 'Untitled(PCCAS)'.(사진제공=국제갤러리)

다니엘 보이드가 플라톤 초상을 그린 'Untitled(PCCAS)'.(사진제공=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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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두드러진 작품은 전시장 한쪽에 작게 그려진 플라톤의 초상이다. 플라톤이야말로 서구식 이성주의의 철학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를 야만에 대한 문명의 계몽으로 정당화하는 사유방식도 플라톤의 이분법과 이성중심주의가 낳은 폐단이다. 작품에 대한 설명과 제목이 없어 작가가 이 그림을 그린 의도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작품 곳곳에서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적 메시지가 발견된다. 이런 점에서 플라톤 초상을 건 의도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번 개인전의 전시명은 ‘보물섬(Treasure Island)’이다. 보이드는 스코틀랜드 출신 소설가 겸 시인인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의 소설 ‘보물섬’(1883)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소설에 언급된 보물섬의 지도를 그린 ‘Untitled(TIM)’와 스티븐슨의 초상을 담은 ‘Untitled(FAEORIR)’, 스티븐슨의 개인 물건들에 기인한 신작 회화 등도 선보인다. 전체 전시는 회화 24점과 거울조각 1점, 영상 1점으로 구성됐다.

전시장 1관에 설치된 회화 가운데 가장 큰 작품은 ‘Untitled(POMOTB)’로 가로 3m, 세로 1.4m다. 이는 1789년 ‘바운티호의 반란’이 모티브가 된 동명 영화(1962)의 포스터를 차용했다. 영화는 영국인 선원들이 폭압적인 함장을 몰아내고 타히티섬 원주민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운티호의 반란’을 소재로 삼은 회화 3점이 내걸렸다. 서구적 일방주의가 대중문화를 수단으로 어떻게 견고하게 유지돼왔는지 알리기 위해서다. 윤혜정 국제갤러리 디렉터는 "영화에서조차 남태평양 원주민을 ‘배경화’·‘객체화’한다는 점에 주목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전시장 2층에서는 보이드의 영상 작품을 볼 수 있다. 초대형 스크린에서 약 6분간 영상이 상영된다. 점묘법으로 찍힌 점들은 고정돼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색들은 끊임없이 변해 마치 움직이는 것 같다. 우리 각자가 가진 시선의 다양성이 견고히 유지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듯하다.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변화하며 새로운 가능성까지 만들어내리라는 기대감이 생기는 듯하다.


다니엘 보이드의 영상 작품.(사진제공=국제갤러리)

다니엘 보이드의 영상 작품.(사진제공=국제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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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 기자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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