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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생 A씨가 매월 말 현금지급기를 찾는 이유[과학을 읽다]

최종수정 2021.06.05 12:44 기사입력 2021.06.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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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자료 사진. 기사와 관련이 없음.

연구실 자료 사진. 기사와 관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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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수도권 이공계 대학원생 A씨는 매달 말 학생회관 앞 현금지급기(ATM)을 찾습니다. '현금'을 찾아 '랩비'를 내야하기 때문이죠. 처음 대학원 입학 후 한 연구 프로젝트팀에 합류하게 됐을 때 였습니다. 매달 받게 된 월급 100만원을 어떻게 쓸까 행복한 고민을 했었죠. 그런데 랩장을 맡은 선배가 부르더니 매월 말 통장 입금되는 월급 중 40만원을 현금으로 찾아 랩비로 내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A씨는 "좀 황당했지만 다들 내는 분위기였고 랩장 선배가 회식이나 간식, 커피 구입 등 '다 너희들을 위해 쓰는 돈'이라고 말했다"면서 "분명히 연구비 중 그런데 쓰라고 배정된 돈이 있을 텐데, 왜 내 월급에서 떼어내야 하는 지 이해가 안 됐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A씨의 사례는 '학생인건비 공동관리'라는 연구 비리의 가장 흔하고 악질적인 경우입니다. 계좌에 모아 관리하다가 적발돼 처벌받는 경우가 늘자 현금을 모아 '흔적'을 남기지 않는 쪽으로 '진화'한 수법이죠.

첨단 기술을 연구해 사회 발전을 선도하는 연구실에서 벌어지는 '후진' 풍경입니다. "21세기에 아직도 이런 일이"라며 언뜻 이해하기 쉽지 않죠? 그러나 이런 연구 비리는 한국사회에서는 아주 흔합니다. 지난해 10월 기준 최근 5년간 한국연구재단에 적발된 건수만 85건 입니다. 그것도 2017ㆍ2018년 15건에서 2019년 22건, 2020년 9월 현재 16건 등으로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일선 연구실에서 만연하고 있으며 단속이 강화됨에 따라 드러나는 케이스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우선 연구실 내에서 교수의 권력이 너무 막강하다는 점이 꼽힙니다. 교수들이 논문ㆍ학점ㆍ졸업ㆍ연구실내 인사 등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연구실에서 저항하거나 다른 말을 하는 것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습니다. 특히 심각한 경우 교수에게 잘해야 취업도 되고 해당 업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절대 충성을 강요하는 분야도 있습니다.


이를 이용한 교수들의 전횡은 심각합니다. 지난 4월 기소된 전북대 이모 교수의 경우가 대표적 사례죠. 그는 몽골 출신 박사과정생에게 주3회 자신의 아이의 병원 진료를 맡기는가 하면 말을 듣지 않자 양말을 집어 던지는 등 폭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통장을 개설하게 한 후 인건비를 편취하고 석사과정 논문 심사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용돈을 받아 챙기기도 했죠. 학생들의 논문에 자신의 오빠와 동생의 이름을 올리는 등 논문 훔치기도 숱하게 저질렀습니다. 학생 개인의 결단에 맡기지 말고 사회와 학교가 나서서 교수들의 연구실내 절대 권력을 분산시키고 학생들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정부나 학교 측의 미온적인 태도도 이같은 비리를 부추긴다는 지적입니다. 전북대의 경우 이 교수의 전횡이 알려졌음에도 공무원 징계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등으로 진상 규명 및 피해 학생 보호 등에 소홀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같은 과 동료 교수 14명이 나서서 "피해 학생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빠른 조치를 요구하고 나섰을 지경입니다.


정부도 겉으로는 '엄정한 처리'를 외치고 있습니다만 역행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2월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에 따라 신설한 연구자권익보호위원회의 퇴행적 행태가 바로 그것입니다. 위원회는 지난 3개월여간 활동을 통해 연구비리 징계 이의 신청건 26건을 심의했는데, 이중 19건(73.1%)에 대해 감경 조치를 결정했습니다. 절반 이상이 학생인건비 공동관리(26건 중 13건)이었는데, 인건비 전액 환수가 아니라 '공동관리'된 몫만 환수하도록 징계를 완화해준 것입니다. 이 위원회는 전체 96명의 위원 중 60%가 대학교수 등 기성연구자들이고 나머지는 법률ㆍ회계전문가, 고위공무원이며 정작 연구비리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학생연구원들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학연 등 팔이 안으로 굽을 수 있는 상황을 막을 방법이 없죠.


현재 우리 사회는 과학기술의 발전 밖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당장 코 앞에 닥친 기후 변화, 코로나19 팬데믹을 해결하고 인류의 지속가능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선 과학기술이 유일한 대안입니다. 그러나 정작 과학기술의 발전을 최일선에서 담당하고 있는 학생연구원들은 19세기적 '도제식' 연구실에 갇혀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해방시켜 21세기적 '평등한' 연구실 문화를 만들어야 인류에게도 희망이 생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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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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