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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人]'한국 냄새' 나는 연기로 오스카에 다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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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나리'로 美서 20관왕 배우 윤여정
사랑스러운 할머니 연기에 비평가들 열광
아카데미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 예측 1순위

[사람人]'한국 냄새' 나는 연기로 오스카에 다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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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74)씨는 영화 ‘미나리’에서 순자를 그렸다. 딸 모니카(한예리)의 초대를 받고 미국 아칸소주로 건너가는 할머니다. 딸 집에 당도하자마자 고춧가루·멸치·한약 등을 하나하나 꺼내 보인다. 미국식 집안에 향토적 정서가 감돌기 시작한다.


"어, 고춧가루…. 세상에! 여긴 이런 걸 구할 수가 없어. 8시간이나 운전해서 댈러스까지 갔는데 별로였어. 어, 멸치도 가져온 거야?"

"야, 또 울어? 멸치 때문에 울어?"

"아, 엄마가 우리 사는 꼴 다 봤네. 미안해, 엄마."

"왜? 바퀴 달린 집이라서? 재미있다, 얘."

순박하고 인정 많은 외할머니를 손주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외할머니가 삶은 밤을 잘게 씹어 건네자 기겁하곤 뒤로 물러선다. 한방에서 지내는 것도 싫어한다.


"한국 냄새가 나."

"넌 한국에 가본 적도 없잖아."

"할머니는 한국 냄새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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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정감 어린 얼굴과 또렷한 한국말이 미국 할리우드를 사로잡고 있다. 현지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는 지난달 28일 아카데미시상식 예측 기사에서 윤씨를 유력한 여우조연상 수상 후보로 꼽았다. "‘미나리’에서 사랑스러운 할머니를 연기해 비평가들이 주는 상을 휩쓸고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윤씨는 크고 작은 미국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20개를 수상했다. 전미비평가위원회를 비롯해 노스텍사스 비평가협회, 뉴욕 온라인 비평가협회, 로스앤젤레스 비평가협회, 보스턴 비평가협회 등이 준 상이다. 강력한 후보로 예상됐던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물론 ‘보랏 서브시퀀트 무비필름’의 마리아 바카로바,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그녀의 조각들’의 엘렌 버스틴 같은 쟁쟁한 배우들을 모두 제쳤다.


버라이어티는 윤씨가 "아카데미시상식에서도 수상한다면 1957년 ‘사요나라’의 일본계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여우조연상을 받는 두 번째 아시아 배우가 된다"고 설명했다. 후보로는 네 번째가 된다. 앞서 이름을 올린 아시아 배우는 우메키와 2003년 이란계 쇼레 아그다쉬루(모래와 안개의 집), 2007년 일본 배우 기구치 린코(바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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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에게 해외 호평은 낯설지 않다. 영화 데뷔작 ‘화녀(1971)’로 스페인 시체스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하녀(2010)’·‘돈의 맛(2012)’·‘다른 나라에서(2011)’로 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도 세 번 밟았다. 1995년 드라마 ‘그대 목소리’의 언년이를 시작으로 다채로운 노인 연기를 선보이며 한국영화 영역 확장에 나서고 있다.


그는 근래 들어 된장찌개를 호호 불며 먹여줄 것 같은 할머니를 자주 연기했다. ‘계춘할망(2016)’의 계춘, ‘그것만이 내 세상(2017)’의 주인숙,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2018)’의 순자가 대표적인 예다. 하나같이 슬픔을 머금고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다.


이런 보편성은 ‘미나리’에서 부조화로 변주된다. 사위 제이콥(스티븐 연)과 딸의 다툼으로 조성된 냉랭한 분위기를 단번에 환기하는 동시에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을 심화해 긴장을 유발한다. 영화 속의 미나리는 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순자는 미나리를 시냇가에 심고 키우며 영화의 주제의식도 드러낸다.


윤씨는 최근 봉준호 감독과 함께한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를 채 다 읽기도 전에 진짜 같은 생생함에 마음이 움직여 출연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촬영을 마치면 함께 숙소에 모여 밥을 해 먹고, 다음 날 촬영분의 대사를 수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만들어서 앙상블만큼은 끝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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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시상식은 오는 4월 2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다. 윤씨는 캐나다에서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를 찍고 있다. 촬영 직후 아카데미 레이스에 합류한다면 수상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동안 스크린 밖에서 직설적 화법과 재치있는 농담으로 특유 친화력을 발휘해온 까닭이다.


그는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도 자신 있는 영어로 좌중을 압도했다. ‘미나리’의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이 "전설적인 배우"라고 소개하자 "내가 늙었다는 말이잖아"라며 손사래 쳐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다른 배우들이 진중하게 소감을 밝히자 "저는 진지하지 않아요"라며 분위기도 전환했다. 이어진 소감은 아카데미 예행연습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저는 한국에서 아주 오랫동안 연기했어요. 사실 ‘미나리’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독립영화라는 걸 알았거든요. 모든 과정이 힘들다는 걸 예상할 수 있었죠. (…) ‘미나리’는 제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에요. 나이 든 여배우로서 더는 고생하며 일하고 싶지 않았어요. 늙어서요. 하지만 아이작 감독이 기회를 줬어요. 그래서 감사하고 있죠. 이렇게 여러분을 만나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어서 기쁩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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