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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오징어]①중국어선 1500㎞ 원정 쌍끌이에 울릉도는 '씨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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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입맛 사로잡은 오징어 인기에 중국어선, 1500㎞ 달려와 북한 수역서 ‘오징어 쌍끌이’
수온 상승 등 해양 환경 변동에 오징어 분포 범위 넓어져 어획량 감소 가속화

울릉군 저동항에서 11톤 급 오징어 배 조업에 직접 참여한 기자가 수동 채낚기로 잡은 오징어. 이날 약 7시간의 조업에서 잡힌 오징어는 20마리에 불과했다. 사진 = 김희윤 기자

울릉군 저동항에서 11톤 급 오징어 배 조업에 직접 참여한 기자가 수동 채낚기로 잡은 오징어. 이날 약 7시간의 조업에서 잡힌 오징어는 20마리에 불과했다. 사진 = 김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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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안 잡혀도 너무 안 잡힙니다.” 지난달 11일 국내 대표 오징어 생산지인 울릉도 저동항에는 조업 대신 정박해 있는 어선이 빽빽이 들어차 있다. 최근 10년 사이 꾸준히 감소해 온 오징어 어획량은 올해 들어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밀려들어 오는 오징어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던 저동항 어판장엔 일감이 없어 손 놓고 있는 어민들의 한숨이 가득하다. 울릉도에서 오징어가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틀간의 조업을 마치고 들어온 내륙 선적이 들어오자 고요했던 저동항 어판장에 잠시 생기가 돈다. 10여 명의 입찰자가 배 앞으로 몰려들었고, 갑판에선 쉴 새 없이 오징어 박스를 실어 날랐지만 이날 175축(3500마리)을 잡았다는 40톤급 채낚기 어선의 선장 표정은 줄곧 굳어있었다. 많이 잡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예년 대비 1/4도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내 시작된 경매에서 오징어는 1축(20마리)당 11만 7800원에 거래됐다. 저동항에서만 40년째 오징어를 손질했다는 할머니는 “옛날엔 위판장에 산처럼 쌓이는 게 오징어였는데, 지금은 안 잡혀도 너무 안 잡힌다”고 말했다.

깊어진 어민들의 시름은 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해양수산부가 지난 12월에 발표한 10월 연근해어업 생산량에서 오징어는 2000톤으로 전년 대비 82%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의 어업생산동향조사에서도 오징어 생산량은 2018년 5099톤으로 전년 1만1709톤 대비 절반 이상의 감소폭을 보였다.


울릉도 인근 해역에서 포착된 중국어선의 모습. 조명 밝기 규제가 없는 중국 어선의 집어등 규모가 눈에 띈다. 이들은 쌍끌이 트롤 방식으로 조업하기 때문에 채낚기 중심인 국내 어선과 비교했을때 압도적인 어획량을 자랑한다. 사진 = 방재관 선장 제공

울릉도 인근 해역에서 포착된 중국어선의 모습. 조명 밝기 규제가 없는 중국 어선의 집어등 규모가 눈에 띈다. 이들은 쌍끌이 트롤 방식으로 조업하기 때문에 채낚기 중심인 국내 어선과 비교했을때 압도적인 어획량을 자랑한다. 사진 = 방재관 선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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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어선은 ‘밝기 제한’, 중국어선은 ‘무제한’


오징어 배 경력 30년의 방재관 선장이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한 장 보여준다. 그는 사진 속 배를 가리키며 “조업 중 해상에서 만난 중국어선”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어선이 1단 2열로 조명을 쓰는데 반해 중국 어선은 5단 2열의 조명이 달려있었다. 방 선장은 “중국 어선은 조명의 양도 양이지만 밝기가 국내 어선보다 2배 가까이 세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국내 오징어 어선의 밝기 기준은 최대 141kW로 제한되어 있다. 반면 일본의 경우 185톤급 미만은 250kW, 그 이상은 무제한이며, 중국은 아예 기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어선이 열세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일래 울릉군 저동어촌계장은 오징어 어획량 감소의 원인을 “중국 어선의 무분별한 남획과 중국 내 오징어 소비 증가”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중국 내륙의 오징어 소비량은 어느 정도일까? 중국 현지 여행사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국 전역의 가판 음식점에서 가장 잘 팔린 메뉴가 오징어라고 한다. 그는 “타이완식 통오징어 튀김과 철판 오징어구이는 어느새 국민 간식 반열에 올라 지금은 중국 전역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중국 포털사이트와 SNS에 오징어 철판구이(鐵板?魚)를 검색하면 산처럼 쌓인 오징어 꼬치 사진과 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중국 어선의 이동경로. 중국의 대표적 어업기지인 산둥반도 유역의 항구에서 출발하는 중국어선은 오징어 잡이를 위해 약 1,500km를 이동, 북한 동해 수역에서 본격적 조업에 돌입한다. 그래픽 = 이진경 디자이너

중국 어선의 이동경로. 중국의 대표적 어업기지인 산둥반도 유역의 항구에서 출발하는 중국어선은 오징어 잡이를 위해 약 1,500km를 이동, 북한 동해 수역에서 본격적 조업에 돌입한다. 그래픽 = 이진경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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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입맛 사로잡은 오징어에 1500km 달려오는 중국어선


오징어가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자 곧 중국 어선들의 어로가 서해와 남해를 넘어 동해까지 확장되기 시작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04년 북·중 어업협정이 체결된 이래 2014년 1904척, 2016년엔 1268척의 중국 어선이 우리나라를 경유해 북한 동해 수역에서 조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정부가 규정한 1척당 입어료가 3만~4만 달러(약 3400만~4600만 원)로 알려진 가운데, 중국 산둥반도의 항구에서 북한 동해 수역 까지 거리는 약 1200~1500km로 연료비만 약 1억 원에 달한다.


북한의 동해 수역은 풍부한 어족자원을 품은 황금어장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탈북민 추방 사건으로 공개된 오징어잡이 배를 보면 북한의 수산업 환경이 열악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그 때문에 대규모 조업이 불가능한 북한이 동해 어장을 외화벌이 수단으로 삼아 중국 어선들에 넘긴 것이다. 이들은 주로 50~200톤급 규모의 선단으로 밝기 제한이 없는 집어등을 이용, 쌍끌이 트롤 조업으로 동해상의 오징어를 싹쓸이하고 있다. 결국 겨울에 남하하는 습성을 지닌 오징어가 중국 어선의 쌍끌이 그물에 앞서 남획됨에 따라 우리나라 동해 수역의 개체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원인이 됐다.

울릉도 저동항 오징어 위판장의 모습. 1축(20마리) 들이 박스가 빽빽히 쌓였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이날 울릉도산 최상급 오징어 1축의 경매 낙찰가는 11만 7,800원을 기록했다. 사진 = 김희윤 기자

울릉도 저동항 오징어 위판장의 모습. 1축(20마리) 들이 박스가 빽빽히 쌓였다는 이야기는 이제 옛말이 됐다. 이날 울릉도산 최상급 오징어 1축의 경매 낙찰가는 11만 7,800원을 기록했다. 사진 = 김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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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온 상승 등 해양환경 변화에 따라 어획량 줄어들 것”


국립수산과학원 연근해자원과 김중진 연구사는 울릉도 오징어 어획량 감소에 대해 “중국 어선의 북한 수역 조업에 따른 영향이 상당히 큰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과거 10년 이상 우리 어선에 의한 동해상 공조 조업과 같은 불법 조업 성행으로 인해 한정된 자원에 어획 강도가 굉장히 높았던 것도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수온이 높아짐에 따라 울릉도 주변 어장형성 비중이 줄어드는 동시에 오징어의 분포범위가 외해로 북상하고 있다”며 “과거와 달리 해양환경 변동이 커지고 있어 갈수록 단기적인 자원회복은 어려울 것”이라 전망했다.


오징어 어획량 감소가 장기화되자 일각에서는 “오징어도 명태처럼 멸종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저동어촌계 소속 남한권 선장은 “정부 차원에서 중국 어선에 대한 규제책을 마련하고 국내 불법 조업 트롤선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한다면 오징어는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라고 역설했다.


오징어의 서식지와 산란 수역이 변화하고 있다. 중국 어선의 북한 수역 오징어 조업 역시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 새해 첫 일출을 맞는 울릉도 어민들의 심정은 복잡다단하기만 하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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