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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B]"노숙인, 잠시 집 없는 어려운 사람들로 생각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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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째 자활 시설 몸 담은 배명희 길가온혜명 원장
"노숙인 복지 사업, 계속 후발로 밀려"
입주 전부터 '님비시설'로 핍박 받기도

배명희 길가온혜명 원장

배명희 길가온혜명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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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처음 시작은 컨테이너 박스 3개였다. 숙소 2개동과 화장실 겸 목욕탕 1개가 전부였다. 북파공작을 했었다는 사람부터 실업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까지. 2001년 복지상담원으로 자활 시설에서 일을 시작했던 배명희(59) 길가온혜명 원장의 기억 속 노숙인 쉼터는 혼란의 공간이었다.


150㎝가 조금 넘는 키에 거친 일은 겪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단아한 모습의 배 원장이지만 그가 해왔던 일들은 결코 쉽고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배 원장은 "IMF 구제금융 이후였던 2001년이 과도기라고 생각했는데 노숙인 복지 사업은 계속해서 과도기였다. 임시 정책으로만 이어져 복지 제도 안에서도 계속 후발로 밀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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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센터장을 '자원'했던 배 원장은 컨테이너 박스를 없애고 약로원이 있던 건물에 들어갔다. 그는 "30년 된 허름한 건물이었음에도 당시엔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많을 때는 49명까지 쉼터를 이용했는데 몇 년 지내다 보니 건물이 너무 낡아서 이사를 결심해야만 했다. 배 원장은 "2012년 강서구에 공공건물로 쓸 수 있는 좋은 곳이 있어서 이사를 계획하고 있었는데 구의원이 노숙인 쉼터가 온다는 걸 알고는 엄청나게 반대를 했다"며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와는 상당히 떨어져 있었는데도 강서구청이 학부모들의 민원으로 도배가 됐다"고 말했다.


결국 계약은 파기. 다시 살 곳을 알아봐야 했다. 찾고 찾다 2013년 구로구 궁동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에 자리를 잡았다.

"잠시 집 없는 1인 가구로 생각해주길"
자기 조절 능력 부족한 탓에 사회에서 소외

금천구에서 구로구로 처음 이사를 왔을 때도 배 원장은 주변 이웃들을 살폈다.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이들과 잘 지내기 위해 길에 쌓인 눈을 입소한 노숙인들과 함께 치우고 주말 농장을 해서 배추나 감자를 수확하면 또 나눠줬다. 최근엔 지역에서 화재 등으로 갑자기 어려움을 겪게 된 주민들을 위해 단기간 입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그는 "일단 사람들이 노숙인이라고 하면 별로 안 좋은 이미지, 특히 IMF 직후 때 나도 어려운데 노력 안 하고 무위도식하고 빌어 먹는 사람으로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다"면서 "그들은 사실 잠깐 문제가 있지만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고 조금만 도와주면 되는 이웃 주민"이라고 했다.


구로구 궁동에 위치한 길가온혜명 외관 및 내부 게시판 모습 (사진=이현주 기자)

구로구 궁동에 위치한 길가온혜명 외관 및 내부 게시판 모습 (사진=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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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온이란 이름도 배 원장의 이러한 생각과 상통한다. 노숙인, 쉼터, 홈리스 같은 이름이 싫어서 고민하다 지은 것이 길가온이다. 길가온은 순 우리말로 바른 길, 올곧은 길이란 뜻으로 길에 있는 분들을 올곧게 세울 수 있는 곳이 되자는 의미를 담았다. 길가온혜명은 노인 노숙인 중에서도 60세 이상을 위한 특화 쉼터다.


배 원장은 "노숙인이라는 명칭 보다 잠시 집이 없는 1인 가구, 경제적으로 어려운 취약 계층 주민으로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실제 쉼터에 오는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면 안정된 직장 생활을 하며 가정을 꾸리고 살아오다 어떤 계기로 정신적 충격을 받거나 사업 실패나 사기를 당해 경제적 위기에 봉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교사나 공무원으로 재직했던 사람도 상당 수 있다.


"물론 거친 사람들도 있어요. 저에게 돌을 던지려고 하는 분도 계셨죠. 하지만 그 분들의 마음 밑바닥엔 약한 구석이 있어요. 어떻게 자기를 조절해서 이겨내는가 그 방법을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그 방법을 배우지 못 해서 가정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소외되고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것이죠."


사각지대 노인들 보면 방법 없는가 절망하기도
"감사하다"며 찾아와 주시는 분들 큰 힘
두 아이를 둔 엄마이…미안하면서도 고마워

서울역과 영등포역을 배회하는 노숙인들을 쉼터로 입소 시키고 이들의 자활을 돕는 과정에서 배 원장은 "사람 능력 밖의 일들이 가끔 있다"고 했다. 너무 아픈 사람인데 병원에 가자고 아무리 설득해도 이를 듣지 않거나 보호가 필요한 상황인데도 쉼터를 나가버리는 상황이 종종 생겼다. 그는 "우리가 적절한 상담이 안 되나 싶기도 하고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는 노인 분들이 많은데 방법이 없는 것인가 고민을 하게 된다"고 했다.


봉사만 할 게 아니라 마지막으로 복지를 해보자고 한 결심이 배 원장을 이곳까지 이끌었다. 그는 "일을 하다 보니까 이 분들을 조금만 도와주면 가능하지 않을까, 길을 열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끊임 없이 들었다"며 "많은 분들이 자립해서 나갔고 감사하다며 찾아 오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된다"고 말했다.


외국에 나갔던 지인이 가져다 주었다는 테레사 수녀 모습이 담긴 엽서. 배 원장 책상 뒷편 선반에 놓여져 있다. 잠시 보여달라고 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현주 기자)

외국에 나갔던 지인이 가져다 주었다는 테레사 수녀 모습이 담긴 엽서. 배 원장 책상 뒷편 선반에 놓여져 있다. 잠시 보여달라고 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이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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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원장은 두 아이를 둔 엄마이기도 하다. 일에 집중하는 사이 아이들은 훌쩍 자라 자기들이 할 일을 찾아가고 있다. 1987년 결혼과 동시에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그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자활 시설에서 일하기 전엔 어린이집을 운영하기도 했었고 장애인 차량 봉사도 했다.


"엄마가 바쁘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큰 애가 4살이 됐을 때 승무원이 동행하긴 했지만 혼자 비행기 태워서 부산 친정에 보내기도 했는데 미안하기도 하면서 잘 자라줘서 참 고마워요."


"65세 정년을 채울 수 있을까. 이제 너무 오래했는데(웃음)"라며 말하는 배 원장의 책상 뒤편 선반에는 1997년 세상을 떠난 테레사 수녀의 엽서가 놓여 있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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