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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B]"멀리 보지 않는 게 인생 모토예요" 92년생 이연우 작가

최종수정 2019.12.13 08:56 기사입력 2019.12.07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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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때 자퇴 말레이시아 국제학교 입학
4년 뒤 귀국 외고 입학 하지 않고 검정고시
만 17살 서울예대 사진과 입학 후 "방황하기도"

이연우 작가가 성북예술창작터에 전시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엮어 낸 단행본 '장롱다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롱다방은 노인 이야기 들어주는 청년 예술가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책이다. 이 작가 친할머니의 인생 보물상자였던 '장롱'을 컨셉으로 잡았다. 그는 "장롱이란 소재가 없이도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행위만으로도 어르신들의 친구가 돼 인생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공=이연우 작가)

이연우 작가가 성북예술창작터에 전시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엮어 낸 단행본 '장롱다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장롱다방은 노인 이야기 들어주는 청년 예술가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책이다. 이 작가 친할머니의 인생 보물상자였던 '장롱'을 컨셉으로 잡았다. 그는 "장롱이란 소재가 없이도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행위만으로도 어르신들의 친구가 돼 인생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공=이연우 작가)



[아시아경제 이현주 기자] "너 혹시 외국 가서 공부해볼래?"


이연우(27) 작가는 십여년 전 엄마의 물음에 냉큼 '예스'라고 답했다. 그 때가 중학교에 입학한 지 일주일 정도 된 시점이었다. 이 작가의 어머니는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에서 중학교 1학년에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운운하는 학교에 질렸다고 했다. 이 작가는 호주에 살고 있는 이모 집에서 머물렀던 행복한 기억이 막 떠올랐다. 출국까지는 한 달이 채 안 걸렸다. 그렇게 혼자서 말레이시아로 떠난 그는 국제학교에 입학했다.


[사이드B]"멀리 보지 않는 게 인생 모토예요" 92년생 이연우 작가


"제가 좋아서 더 있겠다고 하는 바람에 내리 4년을 있었어요. 엄마랑 한창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되니 변화가 필요하겠다 싶어 한국에 왔죠."


만 16살이던 이 작가는 2008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진짜로 할 줄 아는 게 영어 밖에 없어서 외국어고등학교를 가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입학 시험을 보러 갔다. 그런데 이 작가의 기준에서 외고는 명문대 입시 준비 기관에 불과했다.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해서 검정고시를 치고 어머니 지인들의 권유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근데 사진 학원에서 암실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거예요. 그 해 11월 수능을 봤고 대학을 갔죠."


다른 신입생들보다는 어린 만 17살의 나이로 서울예술대학교 사진과 09학번이 된 이 작가는 주목을 한 번에 받았다. 그는 "난 이제 사진이 막 재밌어서 왔는데 다들 저보다 훨씬 깊이가 있었다"며 "수석 장학금까지 받았는데 대학을 다니기 시작한 날부터 다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뭔가 잘 해야 하는데 '잘'이 뭔지를 모르겠더라. 예술의 '잘'이 뭘까" 고민하던 이 작가는 결국 사진을 잠시 접고 휴학 기간 동안 영어도 가르치면서 돈도 벌고 전시도 보러 다녔다.

이 작가는 "요즘은 내가 한 말을 남들이 얼마나 들어주는 지가 힘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고인이 된 구하라씨가 '힘들다, 그만해달라' 계속 말했고 구 씨의 이야기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했다면 그런 댓글을 달지 않았을 것"이라며 "세상이 너무 커지고 사람들도 많아졌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되다 보니 잠시 여유를 갖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가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이 작가 자신이 쓴 '장롱다방' 일부를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작가는 "요즘은 내가 한 말을 남들이 얼마나 들어주는 지가 힘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고인이 된 구하라씨가 '힘들다, 그만해달라' 계속 말했고 구 씨의 이야기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고 공감했다면 그런 댓글을 달지 않았을 것"이라며 "세상이 너무 커지고 사람들도 많아졌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게 되다 보니 잠시 여유를 갖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행위가 더 중요해졌다"고 했다. 이 작가 자신이 쓴 '장롱다방' 일부를 펼쳐 보이고 있다.



그렇게 2년여 시간을 보내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 까닭은 예술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남들이 좋아할 것 같은 것, 남들이 필요할 것 같은 것부터 시작하면 망한다고 배웠다"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통 작가들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고 자기 자신한테 관심이 많은 사람들인데 결국 개인한테 사회가 들어있다"며 "예를 들어 저도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예술가는 스스로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고 싶은 작품 하지만 간간히 생활비 벌기도
어머니 영향 커…"가진 것을 최대한 이용하는 사람"
미래가 불안하다는 질문은 "이상해"
"현재가 만들어져야 미래가 있다"

이 작가는 "화이트 큐브에 작품을 거는 것 보다 하얀 책으로 독립출판을 해서 내 작품을 책으로 만들어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2014년 동료와 함께 '묶음상자'를 첫 발간하고 '가지가지도감' 1권과 2권을 차례로 냈다. 가지가지도감은 옛 서울대 농대 캠퍼스와 비무장지대 속 식물들을 도감으로 만든 책이다. 최근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묶은 '장롱다방'이란 책도 냈다.


"독립출판은 근데 돈이 '1도' 안 돼요(웃음). 그래서 포스터도 그리고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고 있어요."


이연우 작가가 직접 기획한 동그라미 축제. 이 작가는 예술 작품 활동과 동시에 문화 기획도 함께 하고 있다. 동그라미 축제는 청년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각 부스에서 관심 있는 사회 이슈를 각 부스에서 이야기 해보는 형태의 축제다. 로고 디자인도 손수했다. (출처=KT&G 상상마당 홈페이지)

이연우 작가가 직접 기획한 동그라미 축제. 이 작가는 예술 작품 활동과 동시에 문화 기획도 함께 하고 있다. 동그라미 축제는 청년 예술가와 기획자들이 각 부스에서 관심 있는 사회 이슈를 각 부스에서 이야기 해보는 형태의 축제다. 로고 디자인도 손수했다. (출처=KT&G 상상마당 홈페이지)



한 달에 한 번 월급이 들어오는 소위 말하는 '안정된 생활'에 대한 로망은 없을까. 그는 단 번에 고개를 내저었다. 대학 졸업 후 독립을 하고 싶어 바로 취직을 했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이 작가는 "아무래도 엄마의 영향이 큰 것 같은데 저희 어머니는 귀촌하면서 내 집을 지어야겠다고 하시더니 2~3년 만에 직접 집을 지으셨다"며 "누구한테도 빌리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최대한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현실적인 사람이라 무리하게 사는 사람이 아니고 돈도 중요하지만 그것 때문에 굉장히 힘들어질 것 같은 상황은 만들지 않는다"며 "프리랜서의 삶을 살다 보니 때로는 풍요롭고 때로는 가난할 때가 있는데 거기에 맞춰서 타협을 하면서 산다"고 했다.


뒤를 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는 그는 "(미래가 불안하지 않냐는) 질문이 이상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제 인생의 모토가 멀리 보지 않는 거예요. 현재가 만들어져야 미래가 있는 것처럼. 저는 당장 뭘 했을 때 행복하거든요. 저는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지금 내가 행복할 것 같은 길을 선택해왔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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