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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매도, 악의축인가 마녀사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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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매도, 악의축인가 마녀사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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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short sale). 지난 20년간 우리 증권시장에서 공매도만큼 논란이 치열하고 끊임없이 쟁점이 돼온 사안이 또 있을까? 뉴스 검색ㆍ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서 공매도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우선 2000년 무차입공매도가 금지되기 전까지 공매도란 곧 무차입공매도를 지칭했다는 것, 그리고 2000년 이전에는 공매도 언급 기사가 연간 몇 건에 불과했으나 2000년 이후 수백 건으로 증가했고 2011년부터는 매년 1000건이 넘는 기사가 올라왔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을 보면 국민 여론에서 대략 70% 내외가 공매도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듯이 대다수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를 '악의 축'으로 공격하면서 아예 금지를 주장한다. 금융 당국은 이러한 공격이 지나친 '마녀사냥'이라는 기본적 인식하에 점진적 개선에 치중하면서 방어하고 있는 형국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공매도 논란이 우리나라에서만 유별나게 진행되고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과 공매도의 부정적인 측면에도 그 금지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역사상 최초의 공매도는 1609년 근대 증권시장의 효시인 암스테르담거래소에서 동인도회사 주식에 대해 발생했다. 당시 동인도회사의 이사들은 공매도가 "고아와 과부 같은 순진한 투자자들에게 측량할 수 없는 손해를 끼친다"며 당국에 공매도 금지를 촉구해 관철한 바 있다. 그러나 이 금지 조치는 실효성이 약했고 그나마 1689년에 금지 대신 공매도로 거둔 이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쪽으로 변경됐다.

영국에서는 아이작 뉴턴도 큰 손해를 본 남해회사 버블이 1720년에 터지면서 공매도에 비난이 쏟아져 결국 1734년 공매도가 법으로 금지됐다. 그러나 이 법은 제대로 집행되지 않았고 1860년에 폐지됐다. 프랑스에서는 1724년 황제칙령으로 공매도를 금지했고, 나아가 나폴레옹은 1802년 모든 증권 거래에서 실물 증권의 수수를 의무화하고 공매도를 범죄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법 또한 집행은 미약했고 1885년에 폐지됐다. 미국에서는 1929년 증권시장 대붕괴 시 공매도가 주가 폭락의 주요 원인으로 비난받았다. 이에 따라 '1934년 증권거래소법'에 의해 출범한 증권거래위원회가 1938년 '업틱 룰'을 제정해 현재에 이르고, 여러 나라에서 금지된 무차입공매도도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6년에 비로소 업틱 룰이 시행될 만큼 공매도 규제가 느슨해 2000년 초반까지 공매도는 매혹적인 투자 전략으로 널리 행해졌다. 당시 신문에는 '중졸의 증시 풍운아'라는 제목으로 1996년 초 1000만원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공매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투자 전략으로 약 4년 만에 130억원을 번 이모씨에 대한 기사가 실린 바도 있다. 그러나 2000년 4월 우풍상호신용금고가 성도이엔지 주식을 공매도한 후 결제를 불이행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후 무차입공매도를 아예 금지했다. 그럼에도 최근 삼성증권 유령주 사건과 골드만삭스의 대규모 무차입공매도로 공매도 규제의 정당성은 크게 훼손된 상태다.


공매도가 이론적인 타당성에도 비난을 받는 것은 '공정'에 대한 국민감정이 가장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공매도는 모처럼의 주가 상승세를 짓밟는다는 기본적인 인식에 더해 대차ㆍ대주의 불균형으로 외국인(90% 비중)과 기관(10% 비중)만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규제의 허점을 틈타 금지된 무차입공매도마저 할 수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현실이 개인투자자들을 분노케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매도를 아예 폐지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약간의 개선으로는 공매도의 불공정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어려울 것이므로 더욱 근본적인 대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외국인ㆍ기관의 공매도 주문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거나 무차입공매도에 대한 형사처벌과 부당이득 환수 등 기존에 논의된 강력한 방안들을 더욱 신속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니면 아예 발상을 전환해 엄격한 요건(대형주에 한해서ㆍ일정 수량 이하 등)하에 2000년 이전처럼 무차입공매도를 허용하면 어떨까? 우리의 공매도 규제가 주요국에 비해 더 엄격함에도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치를 바에는 차라리 무차입공매도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면서 결제불이행을 방지하는 쪽이 더 합리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고민해본다.


성희활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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