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일 관계는 실무자 간의 합의가 이뤄져도 결국 최종 결정권자의 판단이 모든 관계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판단은 서툴렀다. 이달 초 한 외교 당국자가 우리 대법원의 강제 징용공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응이 누그러지고 있다고 밝힌 게 대표적이다. 일본이 제 풀에 지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양국 외교 당국자 간에는 서로를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은 다르다. 철저히 스스로의 이익대로만 움직인다. 실무진 간에 협의와 의사소통이 이뤄진다 해도 최고 결정권자의 성에 차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일본 우익들은 한반도 정세를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이용해왔다. 표가 필요할 때 한반도 핑계를 댄다. 지금 일본 정가를 장악한 것은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한 우익 세력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통화한 후 양국 관계에 있어 긴밀히 협조하겠다고 한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우익 정치인들에게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통화 다음 날 독도 훈련이 예정됐다는 사실을 강 장관이 알고 있었다면 차라리 통화를 피하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다. 자칫 한국이 일본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다는 오해를 사기 좋은 시점이었다.
아베 총리는 무엇을 위해 영상 공개를 지시했을까. 최종 목표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통화나 회동일 것이다.
아베 총리는 과거 중국과 레이더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해결하자는 주장을 했다. 물론 시 주석은 이에 화답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결국 지난 10월에야 방중에 성공했다. 2012년 발생한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 발생한 지 7년 만이었다.
지금 한일 관계는 당시 중ㆍ일 관계 못지않게 악화된 상태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만들어낸 위안부 합의가 파기된 데 이어 화해치유재단 해산,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공 배상 판결 등 한국의 행보가 불만일 수밖에 없다.
갈등이 클수록 대화가 필수다. 그것도 실무 차원이 아니라 정상 간 만남이 필요하다. 만남이 어렵다면 전화 통화를 할 수도 있고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소통도 가능하다.
내년은 3ㆍ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출범 100주년과 새 일왕의 즉위가 겹치는 해다. 이대로 놔둔다면 양측의 갈등이 폭발하고 관계 회복은 더욱 멀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갈등 해소를 위한 정상 간 만남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백종민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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