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국가부도의 날' 엉성한 연출, 좋은 소재를 날렸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사진=CJ엔터테인먼트

우리는 왜, 영화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를 봐야할까. 영화는 이 물음에 시원하게 답하지 못한다.

‘국가부도의 날’은 영화 시작과 동시에 IMF(국가통화기금) 사태를 겪었던 1997년으로 시계를 되돌린다. 순차적으로 당시 뉴스 화면이 펼쳐지며 관객에게 당시를 상기시킨다. 익숙한 화면은 곧 그때의 아찔한 기억을 소환한다.

국가부도까지 남은 시간은 단 일주일의 이야기를 그린다. 매일 다른 상황이 앞에 놓인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등장인물들이 사투를 펼친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제 호황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때, 곧 엄청난 경제 위기가 닥칠 것을 예견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 분)은 이 사실을 보도하고 정부는 뒤늦게 국가부도의 사태를 막기 위한 비공개 대책팀을 꾸린다.

한편 곳곳에서 감지되는 위기의 신호를 포착하고 과감히 사표를 던진 금융맨 윤정학(유아인 분)은 국가부도의 위기에 투자하는 역 베팅을 결심, 투자자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들을 알 리 없는 작은 공장의 사장이자 평범한 가장 갑수(허준호 분)는 대형 백화점과의 어음 거래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소박한 행복을 꿈꾼다.

대책팀 내부에서 위기 대응 방식을 두고 시현과 재정국 차관(조우진 분)이 강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시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IMF 총재(뱅상 카셀 분)가 협상을 위해 비밀리에 입국한다.

위기를 막으려는 사람과 위기에 베팅하는 사람, 회사와 가족을 지키려는 평범한 사람까지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언론은 OECD 가입과 월드컵에 대한 희망적인 보도를 연일 쏟아내지만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기만 하다. 영화는 설레발 가득한 보도와 국민들의 한숨이 교차하며 당시의 두 얼굴을 객관적으로 비추려 노력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뉴스 화면이 과하게 펼쳐지는 부분은 다소 아쉽다. 인물들의 이야기와 뉴스 화면이 교차하는데 굳이 뉴스로 표현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보여주며 피로감을 안긴다.

각 캐릭터 간의 이야기를 파노라마처럼 펼치는 구성을 차용한 시도는 좋았지만, 만듦새가 엉성한 수준. IMF라는 국민적 공감을 주는 실화 소재를 좀 더 좋은 그릇에 담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준다. 하지만 엉성한 인물 간의 개연성을 배우들의 연기가 보완한다.

배우 김혜수는 한시현을 호연으로 빚었다. 폭발적인 에너지로 극을 잘 이끈다. ‘역시 김혜수’라는 반응을 이끌만큼 안정적인 연기로 연출적 빈틈마저 메꾼다. 뱅상 카셀 역시 마찬가지. 영화 시작 1시간 20분이 지나서야 등장하지만, 그는 매 장면을 씹어 먹으며 활약한다. 특히 김혜수와 뱅상 카셀이 맞서는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그러나 ‘국가부도의 날’은 이 영화를 왜 봐야 하냐는 물음에 끝까지 답하지 못한다. 엉성한 연출로 지어간 영화가 끝내 용두사미 결말을 펼쳐 아쉬움을 준다. 특히 일부 장면에서 피해자를 자극적으로 소비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실화 소재를 영리하지 못하게 소비했다는 점도 아쉽다. 114분. 12세관람가. 오는 28일 개봉.

이이슬 연예전문기자